악의 영혼 1악의 영혼 1 - 10점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노블마인

범인은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모두 전달한 것이다. 브롤린은 그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다시 시작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그 욕구는 극복하기 힘들다. 곧 연쇄살인범들이 경험하는 상실감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살인을 시작할 것이다. 피는 마약보다 훨씬 강렬하다. 그자는 다시 시작할 것이다. 온 세상에 자신의 메시지를 퍼뜨리리라. - [악의 주술 중]
프랑스의 젊은작가 막심샤탕의 '악의 3부작'(악의 영혼1.2, 악의 심연, 악의 주술)은 연쇄살인범들을 통해 악의 실체가 무엇인지 파악해 나가는 스릴러물이다. 납치, 감금, 고문, 강간, 살인으로 시작되는 사건들은 1명에서 2명으로 2명에서 무한정으로 피해자를 증식시킨다. 이 3부작에 등장하는 범인들은 모두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계산된 살인을 행하는 인물들이다. 무질서한 범죄처럼 보여도 모든 조각은 살인범의 계획하에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형사이자 프로파일러인 죠슈아 브롤린은 살인범의 무질서한 조각들을 끈질기게 이어붙인다.

3부작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모두 기발하다. 주인공인 브롤린의 말처럼 대개의 연쇄살인범들은 지적 능력이 우수한 인물들이고 살해 이유가 트라우마에서 비롯되던 개인의 천성에서 비롯되던간에 촘촘히 계산된 살인을 한다. 단순한 쾌락 살인일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막심 샤탕이 소설의 첫머리에 이 모든 이야기는 잔혹하지만 현실에 기반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이 뿜어내는 악마적인 피냄새가 아무리 진하다고 하더라도 작가의 상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리고 좀 더 현실성을 획득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범인들의 자취를 훑어나간다.

이야기가 촘촘하고 뛰어난 소설들을 보면 작가의 방대한 사전조사에 놀라게 될 때가 많다. 막심 샤탕도 단순히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활자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현실 속의 사건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그걸 해독하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과 심리적인 기법을 엄청나게 흡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잔인한 수사극이 '잔인한' 쪽에 단순히 무게중심이 실려있지 않아 보여주기 위한 잔인함이 아니라 잔인한 것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악을 탐지해내려는 주인공의 발걸음에 쉽게 동화된다.

막심 샤탕은 같은 종인 인간을 수십명씩 죽이는 연쇄살인범이라는 악의 실체를 근대화 이전보다 더 많이 갖게된 자유에서 찾기도 하고, 타고난 본성에서 찾기도 하고, 트라우마에서 찾기도 하지만, 악의 실체와 근원이 정확히 무언지 정의 내리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프로파일러들이 그러하듯 형사에서 사설탐정으로 변신한 브롤린이 살인범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스스로 살인자가 된 듯 사고를 해내는 모습에서 그들의 섬뜩한 내면을 엿볼 수 있다. 브롤린의 동료는 그가 살인범인양 사고하는 모습을 보며 소름끼쳐하기도 하는데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가진 살인범과 형사의 양면성이 대단히 매력적이고 이 인물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결국 그는 그가 가진 분노를 범죄자들을 법의 심판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처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서두에도 밝혔듯이 악의 3부작은 살인뿐 아니라 그 추적과정도 철저한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니까 소설 속의 형사들은 범죄 현장의 증거들의 과학적인 해석과 추리를 바탕으로 범인을 검거한다. 반대로 형사들은 많은 증거 속에 진짜를 가려내기 위해 범인을 오판하기도 한다. 이것은 독자를 속이기 위한 트릭으로 작용할 목적으로 쓰였겠지만, 독자들은 범인을 의외로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과학적인 실험 결과를 토대로 한 정보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범인을 쉽게 맞출수 있으니 재미없지 않느냐라고 하면 대답은 '아니오'다. 범인을 검거하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섬세하게 연출되어 있고, 캐릭터들도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악의 3부작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독립적이라 어떤 편을 먼저 읽든 관계는 없지만, 기왕 책을 펼쳐들거면 반드시 악의 영혼, 악의 심연, 악의 주술 순으로 차례로 읽기를 권한다. 3부작을 통해 성장하고 파멸하고 일어서는 브롤린이라는 캐릭터 발전의 매력을 톡톡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3부작 모두 강력 추천이다.

첨언.
-.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추리해 나가다 후반부에 결정적인 사건을 우연성에 기대어 풀어나가는 부분이 하나씩 등장하는데 이 부분이 좀 안타깝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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