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와 제니 자매는 써커스로 유랑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여섯 아이를 키우는 거트루드 부인의 집에 맡겨진다. 여섯 아이들로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거트루드는 주급 20달러의 양육비가 부모로 부터 늦는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하고 훈육과 매질에서 시작된 이러한 폭력은 결국 한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토미 오하버 감독의 아메리칸 크라임은 1965년 인디아나 주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법정의 재판 장면과 인물들의 진술에 따른 회상장면을 교차로 편집해서 보여주고, 영화 속의 진술 장면들은 모두 실제의 진술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메리칸 크라임은 잘못된 것은 복수와 대가를 통해서 보복을 당해야 한다는 부모의 잘못된 가치관과 그런 가치관 속에서 조금씩 커진 폭력의 상황들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실비아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며 행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반성하도록 고문을 가하는 거트루드는 자기 자신은 싫어하는 모습이지만 절대 버릴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마치 실비아에게 그렇게 고문을 하면 자신의 죄와 천함이 사라지는 것처럼 폭력을 행사한다. 거트루드가 실비아에게만 유독 그렇게 고문을 가하는 이유는 큰 딸인 폴라 때문이기도 하다. 폴라는 거트루드가 처음 아이를 출산할 정도의나이였고 그 나이 또래의 자신처럼 미래없는 남자를 만나고 다니다 결국 임심을 한다. 지긋지긋하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다시 살고 있는 자신의 첫딸은 아무런 충고도 듣지 않는다. 그러니 결국 자신의 죄와 첫째딸 폴라의 죄를 구원받을 구실을 찾게 되고 결국 또다시 실비아에게 고문을 가한다.

실비아가 맡겨진 가족들 뿐 아니라 영화는 모든 동네 아이들이 매일 마다 몰려와서 곤충의 팔다리를 자르는 실험을 하듯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담배불로 지지고 주먹으로 때리고 찬물을 뿌리고 기둥에 묵어두고.... 어떤 아이는 그녀에 대한 질투심으로, 어떤 아이는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처음의 폭력을 휘두르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것에 대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서 폭력을 행사한다. 인간은 자신이 한 일이 외부로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확신과 자신의 위치가 집단 속에서 익명이 되어 묻혀버리고 그런 집단이 권력을 소유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떠한 짓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의 아이들은 마치 전쟁에서 포로를 괴롭히는 병사들처럼 사악하게 변한다. 그러니 법정에서 '전 실비아가 아무것도 못 느끼는줄 알았어요', 혹은 '아무생각 없었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증언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소름끼치는 일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불쌍한 실비아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듣고서도 이웃사람들은 간섭하고 싶지 않아 신고하지 않는다. 이렇게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시스템이 완벽하게 짜여져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한다.

일본에서도 이런식의 감금 살해 사건인 콘크리트 살인사건이 있었지만, 그들은 작정하고 악인들이었고 '아메리칸 크라임'에서 쏟아지는 폭행들은 주어진 상황에서(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할 수 있는 상황들) 순박한 아이들이 얼마나 극악한 짓도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점에서 동일하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화 엑스페리먼트와 닮아있다.

아메리칸 크라임은 한명의 광기에서 시작된 폭행의 한점은 피해자들의 두려움과 갖가지 감정이 섞여들어 그들을 가해자로 만들고 결국 살인에 이르게 만드는 과정을 참 단조롭고 끔찍하게 보여준다.더욱이 주노의 반짝반짝 히로인 엘렌 페이지가 그 끔찍한 짓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린다 아려. 연기는 또 어찌나 잘하는지...

제목: 아메리칸 크라임 (An American crime, 2007)
감독: 토미 오하버
배우: 엘렌 페이지, 헤일리 맥파랜드, 캐서린 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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