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눈먼 자들의 도시 - 10점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네오북)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의 설정은 실로 단순하다. 어느날 갑자기 원인 불명의 실명 전염병이 한사람으로부터 불가항력적으로 퍼져나가 순식간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맹인이 되고, 단 한명만이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맹인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공포소설보다 더럽고 무섭고 잔인하고 세세하게 잘 묘사가 되어 독자로 하여금 인간 본연의 모습을 깨닫게 하고 현사회를 풍자한다.

격리된 맹인들 속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의 지옥을 읽는 것, 그러니까 눈 뜬 여인이 지켜보는 새로운 사회상을 보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어떤 것보다 절망스럽다. 소설은 끊임없이 그들이 눈이 멀기 전에도 아무것도 보고 있지 못했음을 설파하고 독자도 눈먼자들에 다름 아님을 강조한다.

새삼스럽게 자본으로 이루어진 이 사회에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모습을 역설적으로 그렸다고 얘기하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보이는 것에만 의지하는 얄팍한 벽을 사이에두고 그것이 얼마나 쉽게 붕괴될 수 있는 것인가하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성으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타인을 물질 자체로 여기고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보이는 것만 믿는 작금의 세상이 눈이라는 신체구조하나로 더러운 마음들이 표면적으로 그렇게 간단히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3인칭 소설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개개 인물들에 감정이입할 틈을 주지 않고 clockwork orange처럼 억지로 눈을 뜨게 하고 보기를 강요하는 것 같아 읽기가 어려운데, 눈먼 자들의 도시는 그런 소설 중 단연 최고다. 이런 내용과 형식의 소설을 읽는 것은 진정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고문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눈 뜬 자가 가장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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