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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이지 않는 실체에게 폭행과 강간을 당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심령의 공포'는 줄거리에서 연상되는 것과는 달리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영화다. 아버지 없이 아이를 키우는 공포. 그 공포는 칼라 자신으로부터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녀가 만난 남자는 아버지를 포함해서 모두 그녀를 성적으로 괴롭혔고 크나큰 트라우마를 남기지만 그녀는 현실을 똑바로 인지하고 그것에 초연하다. 똑똑한 여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주변의 남자들은 올곧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친구의 남편이 그렇고 정신과 의사가 그렇다. 특히 정신과 의사의 집요함은 치가 떨릴 정도인데 그는 자신이 믿는 학문의 오차를 한치도 의심하지 않고 그녀를 이해하여 치유하려 하기보다는 그 자신의 학문의 테두리 안에 그녀를 끌어들임으로써 또다른 폭력을 행하는 주체가 된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 부류들도 그 현상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기전까지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학문이라는 틀 안에서 현상을 이해하고자하는 부류들도 이해의 과정은 철저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등장인물 모두 이런 히스테릭한 개인성을 보임으로써 그녀에게만 보이는 현상(곤경)이 타인에게도 보이게 됐을 때 그녀가 받게 되는 심리적 위안은 감동적이기까지하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거부하는 집단은 그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도 끝까지 믿으려하지 않는다.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괴물이 있다고 믿는 아이의 말을 웃어넘기는 어른들이 나오는 영화와는 본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내용 뿐만 아니라 연출도 좋다. 최초 미지의 존재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공포스럽기 그지없다. 불안정한 각도로 비추는 카메라와 느닷없이 얼굴을 얻어맞고 자행되는 강간, 그리고 흘러나오는 음악과 별다른 특수 효과 없이 그냥 침대를 흔들어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물론 칼라 역의 바바라 허쉬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또한 가슴을 주물러대는 아날로그 특수효과도 일품이고.

이 영화는 마지막에 이 이야기가 실화임을 밝히고 있고 그녀가 아직도 간헐적으로 미지의 존재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미지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 사회의 여성들은 끊임없이 외부(시선 혹은 편견)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니 강조하지 않아도 이야기 자체는 애석하지만 실화임에는 분명하다.

어릴적 공포영화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대부분의 사람이 야한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는 음흉한 목적이 있는데 이 영화를 선택했던 나도 야시시함을 기대하고 봤다고 한방 크게 얻어맞았던 기억이 난다. 멋진 영화다.

제목: 심령의 공포 (The Entity, 1981)
감독: 시드니 J. 퓨리
배우: 바바라 허쉬, 론 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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