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스콧이 90년에 만든 황톳빛 느와르 '리벤지'는 마피아의 아내를 사랑한 남자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퇴역장교 코크란은 그의 친구이자 마피아 보스인 티비의 아내 미레이아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들의 밀애행각은 티비에게 들통나고 코크란은 실컷 두드려 맞고 버려지고 미레이아는 입언저리부터 귀까지 칼로 주욱 그어져 사창가에 넘겨지게 된다. 코크란은 티비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한 남자에게 구출되고 이제 그는 미레이아를 찾아간다.

데이빗 보위와 수잔서랜든, 카뜨린느 드뇌브가 함께한 독특한 뱀파이어영화 헝거로부터 시작된 토니스콧의 감각적인 연출스타일은 탑건을 거쳐 리벤지와 트루로맨스의 걸출한 영화들로 쭈욱 이어진다. 선굵은 남자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온 토니스콧의 영화에서 유독 에로틱한 느낌이 강한 영화들이 바로 위의 영화들이다. 트루로맨스야 타란티노의 그림자가 더 커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영화들에서 에로틱함은 나인 하프 위크의 그것만큼 강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에로틱한 장면들이 폭력적인 장면 사이에 어울려서 등장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폭력과 에로는 함께 할때 그야말로 두려운 것이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

멕시코가 배경인 리벤지는 언제나 모래먼지가 바람을 따라 흩날린다. 작렬하는 태양아래 사람들의 피부는 온통 땀으로 번들거리고 황토빛 거리는 폭력의 불온한 공기가 감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코크란과 미레이아이 정사신은 정말 자극적인데, 토니 스콧은 그들의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치마가 올려지는 다리와 엉덩이, 그리고 키스할 때의 입술을 클로즈업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키스의 짠내가 느껴질 정도의 아찔함을 느끼게 한다. 이 영화를 처음 본게 한창 사춘기였을때라 메들린 스토우의 혀가 케빈 코스트너 입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일종의 충격까지 느꼈다고나할까
.

티비가 아내의 부정을 알고 그들의 밀애장소로 들이닥치는 장면은 조용하지만 박력이 넘친다. 문이 부서지면서 총알이 날아와 코크란의 개에게 박히고 잠자는 코크란은 끌려나와 죽도록 맞는다. 미레이아가 그가 맞는 것을 지켜보도록 하면서 코크란의 얼굴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손가락을 밟아서 부러뜨린다. 이 장면이 잔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반대방향으로 구부러진 손가락의 클로즈업과 모래와 섞여 떨어지는 피의 걸쭉함, 그리고 퉁퉁 불어터진 얼굴때문이다. 특히 여기서 피의 걸죽함은 섹스에서의 땀을 연상시켜 더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

리벤지의 국내개봉제목은 '이중복수'였는데, 사실 코크란은 티비에게 복수를 하지 못한다. 그가 먼저 친구를 배신하였기 때문에 티비를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를 죽이지 못한다. 그저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한뒤 미레이아가 있는 장소만을 원한다. 이 남자에게는 복수 보다도 사랑이 우선이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에 미레이아는 몸이 쇠약해져 수녀원으로 옮겨져 숨을 거두는데, 이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짠하다. 사경을 헤메다가 코크란의 얼굴을 보자 부끄러운 듯 뺨에 그어진 칼자국을 손으로 가리는 미레이아의 손을 내리면서 안아 올리는 장면은 볼 때마다 눈물을 떨구게 한다
.

리벤지는 감독이나 주인공이나 모두 최고의 전성기 때에 찍은 영화라는 생각인데, 케빈 코스트너도 언터쳐블, 노 웨이 아웃, 19번째 남자, 꿈의 구장을 거치면서 한창 주가가 오른 상태여서 이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메들린 스토우는 이 영화에서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날 지경이다. 모든 여배우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영화가 있게 마련인데 메들린 스토우에게는 그것이 이 영화가 아닐까한다. 블링크와 배드걸즈 이후에는 국내에서 잊혀진 감이 없지 않지만, 리벤지의 변주라고 생각되어지는 '어벤징 안젤로(2002)'를 보니 50이 가까워진 나이에도 미모는 여전해보인다
.

덧붙여.
코크란의 조력자로 나오는 미구엘 페러와 존 레귀자모는 없었으면 오히려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의 목적은 티비를 죽이는 거였는데, 결국 죽이지도 않으니 뭐하러 도와줬나 몰라. 존 레귀자모도 타고난 악역의 얼굴인줄 알았더니 이 영화에서는 뽀송뽀송하면서 시골뜨기의 순박함까지 느껴지는게 정말 귀엽다.

제목: 리벤지 (Revenge, 1990)
감독: 토니 스콧

배우: 케빈 코스트너, 안소니 퀸, 메들린 스토우, 미구엘 페러, 존 레귀자모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