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대표를 보면서 이런 영화야 말로 정말 나쁜 영화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하정우를 제외한 캐릭터가 모두 너무나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것은 괜찮은데 영화가 그들을 포장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기적인 인물들이 갈등을 해소해 나가고 사실은 모두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혹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기에 최초의 불순한 동기가 모두 희석될 수 있다는 식의 시선은 결과적으로 모두 따뜻하게 안아주면 그 외의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다라고도 해석될 수 있고, 이 영화는 인물들을 모두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 바보 동생을 스키 점프대 위에 세우는 마지막에 가서는 그야말로 할말을 잃었다. 이런 살인적인 행위를 코미디와 감동으로 연결시킬 생각을 한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런것이 화장실 유머의 일환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실화를 바탕에 깔아두고 감동을 강요하는 영화에서 이런다면 이건 범죄 행위다.

2. 벼랑위의 포뇨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뭉클한 장면이 등장한다. 사람에 대한 마음이 너무 천진하고 순진해서 불러일으키는 감동. 포뇨가 소스케를 그리워해서 쓰나미를 몰고와 파도를 뛰어가며 차안의 소스케를 쫓아가서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만들어낸 발로 달려서 그에 대한 사랑으로 만들어낸 팔로 꽉 부둥켜 안는 장면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란 그래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항상 내가 이런 식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개에 감동을 받는 것은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든가 혹은 존재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항상 이웃집의 토토로를 보면 눈물이 난다.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순진함에 대한 혹은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것에 대한 그리움 내지는 동경의 감정으로서 말이다.

3. 주말에 JPT를 보았다. 평소 실력으로 보면 어느 정도가 나올지 궁금해서 시험 삼아 한번 봤는데, 너무 느긋하게 문제를 풀어서인지 마지막 8문제는 읽어보지도 못하고 찍었다. 오랜만에 시험을 볼려니 두시간동안 자리에 앉아서 문제를 푸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든지. 문제의 난이도를 떠나서 두시간동안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문제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었다. 새삼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4. 날씨가 차가워져서 그런지 누군가가 죽는 것에 대한 단상이 나도 모르게 펼쳐진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했지만,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 내 마음이 어떨지 짐작도 하지 못하겠다. 영화 똥파리에서 아버지를 그토록 증오하고 미워했지만, 그가 죽을려고 하자 주먹질을 하며 분노를 표출했던 주인공의 감정은 단순히 분노만은 아니었을게다. 올해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서인지 죽음이라는 것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기에 이러한 편린들이 나를 괴롭히는지도 모르겠다. 날이 이렇게 추운데 처음으로 땅 속에서 맞이하는 겨울이 그에게 너무 춥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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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 10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데니스 루헤인의 사립탐정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인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는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이 순진한 청년들을 꾀어 악을 전염시켜 또다른 살인마를 양산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타고난 범죄자인 싸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의 확장형으로서 이러한 악한 범죄에 대한 전염성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언제나 흥미롭다. 막심샤탕의 악의 영혼이나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들 말이다. 사람들은 매스미디어든, 돈이든, 사람이든 하여간 뭐든 간에 사방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고 그것들중 어떤 것은 공포를 만들고 범죄자를 키워낸다는 전개는 그럴듯한 개연성을 가진다. 커다란 공포의 피해자가 되기 보다는 차라리 가해자가 되고 말지라는 그런 심성이 보인다고 할까. 언제나 생각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선의의 전염보다는 악의의 전염이 더 빠르다.

이 소설에는 정의로움에 불타올라 범인을 수사하는 탐정이나 경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탐정이기에 사건 의뢰의 시작은 돈이며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수록 드러나는 범죄의 잔혹함에 치를 떠는 켄지와 제나로는 법이라는 공권력에 기대어 교도소나 정신병원에 그들을 넣기 보다는 그들 스스로 범죄자들을 처단하길 원한다. 경찰 또한 그들에게 그런 처형을 보장해 주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들을 '죽인다'는, 즉 아무리 나쁜 놈이지만 살인을 한다는 죄책감과 살인을 하면서 느껴지는 신과 같은 전지전능함의 쾌감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한다. 부조리한 상황에 분노하고 과도하지 않게 발휘되는 정의심이 힘과 권력보다는 땀내를 느끼게 하여 캐릭터를 현실적이고 매력적이게 만든다.

소꿉친구로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켄지와 제나로도 매력적이지만, 폭력이나 부조리한 현실에 절어있는 주변의 모든 인물들도 매력적이다. 눈 하나 깜짝않고 사람을 죽이지만 켄지와 제나로에게만은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건달 부바나 경찰임에도 법보다 주먹을 믿는 형사 데빈과 오스카, 퇴직경찰로 바를 운영하는 착한 맡형 같은 느낌의 게리 등 주/조연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매우 생동적이며 작품의 재미를 한껏 올려준다.

폭력을 쫓지만 그 자신이 아동학대나 주정뱅이 남편의 피해자였던 켄지나 제나로의 입체적인 캐릭터 뿐 아니라 사회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범죄와 범죄 조직, 그것을 용인하며 또다른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 또한 매우 정교하다. 사람을 몇백조각으로 갈가리 찢어서 전시하는 극악 무도한 연쇄살인범을 쫓지만, 그 자신들도 과거의 피해자이면서 폭력에 대해 그다지 떳떳하지 못한 주인공이기에 이것들이 맞물려 말 그대로 폭력이라는 진흙탕과 진흙탕 속의 자경단이라는 또다른 물음들을 쉴새없이 던지는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는 그 제목만큼이나 달콤하고 겁나 재미있다.

밀리언셀러클럽을 통해 출간된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는 순서대로 출간되지 않았으니 혹 관심있는 분들은 시리즈의 순서대로 읽기를 권한다. '전쟁전 한잔'을 시작으로, '어둠이여 내손을 잡아라', '신성한 관계 (출간 예정)', '가라 아이야 가라', '비를 바라는 기도'의 순서이다. 순서대로 읽었으면 좋았을걸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덧붙여.
-. 가라 아이야 가라의 영화를 보고서 책을 읽으니 켄지는 캐시 애플렉, 제나로는 영락없이 미쉘 모나한의 얼굴이 떠오른다. 둘다 정말 적역이라는 생각. 가라 아이야 가라는 영화도 상당히 재미있다. 모건 프리만, 에드 해리스가 출연해 주니 카리스마 또한 일품이고.

-. 시리즈 중에 가라 아이야 가라만 읽었는데 나머지도 이참에 다 질러 버렸다. 신성한 관계가 어여 출간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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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곧 있으면 결혼한지 200일이 가까워 온다. 아직도 신혼이라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초반에는 다툼도 좀 있었다. 죽네 사네 할 정도의 다툼은 아니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둘이 살다보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부딪히게 되는 그런 경우. 예를 들어 부모님께 문안 전화를 정기적으로 드린다던가하는 그런 것. 물론 나는 오래전부터 혼자 생활해 온 것이 익숙한 터라 전화를 잘 안 하는 편이었고, 그런 나를 마눌님께서는 좀 야속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다툼이 생길 경우 말다툼의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싸움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돌아보면 대단할 것도 없지만, 속상함에 목을 놓아 울기도 하고, 악에 찬 험담을 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그래 내가 나간다'하면서 집을 나가기도 하고, '가긴 어딜가 나갈려면 내가 나간다'하고 문앞에서 유치한 실갱이를 벌이기도 한다. 그러고 몇 분(몇시간이 아니라) 지나면 나간 사람을 찾으러 문 밖에 나서고, 겨우 만나서 얼굴 한번 보고 한 번 안아주면 뭐 때문에 싸웠는지 잊어버리는 그런 사소한 다툼. 그런 것들을 몇번 반복하고 나니 200일이 가까워 온다. 아~. 물론 지금은 그런 다툼도 없다. 너무 다툼이 없어서 이래도 되는걸까 싶은 그 정도.

2. 팔불출이라고 하겠지만, 결혼 전보다 결혼하고나서 더 많이 사랑하게 됐다. 모르던 둘이 사는 것이고, 게다가 좋던 싫던 매일 얼굴을 마주 보고 한이불을 덮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보기 싫은 면도 생길 수도 있고, 좋았던 것도 질릴 수가 있다. 그러니 사랑의 온도가 식을 수도  있지만, 다툼의 상황에서도 '서로 행복하기 위해 같이 살고 있다'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 떠올린다면 안 좋게 흘러갈 수 있는 상황들도 반전을 거듭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사랑이 없는 결혼이라면 이런 작은 것들을 극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상을 보내고, 그 사람의 체온을 느끼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조건만 따지는 이들은 결코 모를 것이다.

3. 이러나 저러나 별로 가진 것도 없는 나를 선택해준 마눌님께는 항상 고마운 마음 뿐이다. 이제 고작 200일 이지만, 앞으로 200만일까지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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