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다큐멘터리(모큐멘터리) 기법으로 간만에 관객들의 심장을 오글거리게 만든(최근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이처럼 공포에 떠는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죽임을 당하기까지의 일상을 심플하게, 하지만 매우 영리하게 찍어낸 영화다.

어린시절부터 악마에게 시달림을 당한 케이티의 애인 미카가 악마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찍어나간다는 것이 영화 줄거리의 전부다. 현실성을 미끼로 관객에게 공포를 주기 위한 영화에서 유령/귀신 따위가 아니라 악마라는 뜨악한 개념 자체를 불러온 것에서 영화가 그 존재를 보여줄 생각이 애초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저들을 집어삼킬 거대한 존재가 있고, 관객들은 그들이 죽어나가길 러닝타임 내내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미카의 카메라에 악마가 찍힌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퇴마사도 손들고 떠난 존재에게 일반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악마의 존재가 증명되는 순간 주인공은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결론 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공포는 제목 그대로 파라노말한 액티비티를 순차적으로 나열하고 그 속에서 주인공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소시민의 무력감을 통해서 공포를 발생시킨다.

또 하나 이 영화가 영리한 점은 클라이막스가 없을 법한 영화의 플롯에서 밤과 낮의 시간 간격을 조절하여 클라이막스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낮 장면과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나타나는 밤장면을 교대로 보여주는데 후반으로 달려갈수록 낮과 밤의 시간 간격이 점차로 줄어든다. 안전하다고 인식되는 낮 장면이 끝나면서 카메라가 고정되고 관객에게 공포의 순간을 목도하도록 만드는데 밤 장면이 시작되면 관객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연스럽게 공포를 느낄 '준비' 한다. 이런 긴장-이완의 상태를 반복시키면서 그 간격을 좁혀나가고 결국 낮에도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공포의 시간인 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낮도 결코 안전하지가 않다는 인식을 관객에게 주입하여 클라이막스를 만들어 낸다. 긴장과 이완을 통한 공포의 학습과, 긴장과 이완의 시간을 줄이고, 긴장과 이완의 경계를 허물면서 공포를 생성하는 것이다.

사실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모큐멘터리로 이건 진짜라고 우기는 영화지만, 결국 영화는 영화일 수 밖에 없는 헛점들도 분명 존재한다. 미카와 케이티는 한밤중에 정체 불명의 소리가 나는데도 불을 켤 생각은 하지도 않고, 케이티는 영화 내내 무섭다고 징징거리고 카메라로 찍지 말라고 그렇게 난장을 피우더니 정작 그 존재가 나타났을 때 직접 카메라를 들고 뛰어나간다. 또한 기기 매니아에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미카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수없이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튜브에 올릴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유튜브 시대의 장르 속에서는 정작 유튜브를 활용하지 않는다.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앞서 기술한 장점들로 인해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관객은 이미 침투된 공포로 인해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모큐멘터리 기법은 새로운 장르도 아님에도 최근에 이런 류의 영화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오고 인정을 받을까. 위키페디아에 보면 50년대에 영국텔레비젼에서 만우절날 방송한 '스위스 스파게티 수확'이라는 스파게티 면을 나무에서 딴다는 코믹 다큐멘터리도 있었고, 우디 알렌의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도 일부 장면에서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하고 있고, 이것을 공포 장르에 적용시킨 것은 가깝게는 REC, 클로버필드, 디스트릭트9이 있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블레어위치 프로젝트와 개를 문 사나이에, 일본 쪽으로 눈을 돌리면 노로이를 대표로 수많은 괴담류의 모큐멘터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에 이렇게 많은 수의 영화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 확실히 사용자가 만들어나간다는 유튜브의 영향이 클 것 같다.

사용자가 만드는 영상은 모두 투박한 질감을 가지고 있다. 퍼니스트 홈비디오류에서부터 전쟁과 재난의 현장을 담은 뉴스릴을 생각해 봐도 모두 마찬가지다. 투박한 질감은 관객에게 별다른 의심없이 이 영화(픽션)가 진짜(논픽션)라고 인식하게 만든다. 유튜브에 익숙한 요즘의 관객은 이런 류의 질감을 가진 영화에 이전보다 손쉽게 공감하게 된다. 모큐멘타리라는 장르의 외피가 이미 무의식중에 습득 된 결과다. 장르가 익숙한 것 혹은 반복적인 것의 암묵적인 약속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모큐멘터리는 장르와 더불어 유튜브는 진실이라는 암무적인 약속이 한번 더 이루어진 셈이다. 그럼으로써 가짜를 좀 더 손쉽게 진짜라고 믿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식의 암묵적인 약속을 통해서 픽션과 논픽션이 혼재됨에 따라 영화는 좀 더 현실 깊숙히 침투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기술을 통해 가짜를 현실로 침투시키는 3D나 4D 영화와 모큐멘터리의 지향점이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더욱 나아가다 보면 영화의 끝은 가상현실이 아닐까. 결국 극으로 치달으면 (영화가 현실 깊숙히 침투한다면) 픽션과 논픽션이 없는 세계가 펼쳐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든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재미있는 영화다.

덧붙여.
-. 오리지날 엔딩이 섬뜩함은 더했지만, 극장판 엔딩이 좀 더 영화적이기도 했고, 박력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 사실 나는 이런 영화에 참 약하다. 간만에 후덜덜한 감상을 했다. 마눌님은 순진하게도 이 영화가 진짜 다큐멘터리라고 믿고서는 극장문을 나서며 구토가 날 정도로 무서워했다.

-.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보고 나서 영화의 미래가 이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제임스 카메룬은 아바타를 통해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전세계의 극장에 재현해 냈다. 오다이바의 공포의 집인 다이바 괴기학교에 다녀오고 나서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다이바 괴기학교류의 공포의 집이 혼합된다면 정말 무서운 영화가 나오겠구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후지큐랜드의 전율미궁을 시미즈 다카시가 3D로 만든 영화가 있더라.

제목: 파라노말 액티비티 (Paranormal activity, 2007)
감독: 오렌 펠리
배우: 케이티 피더스턴, 미카 슬로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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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말부터 시작해서 한동안 정말 바빴다. 회사에서는 과제로 고문당하고, 출장도 주구장창 다녔다. 여기저기서 고문을 당했더니 별다른 다이어트 없이도 5kg이 빠졌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살이 빠져도 뱃살은 그대로인 것이 문제라면 문제. 지난번 건강검진에서는 '비만주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워낙 마른 체질이었던지라 뚱뚱한 사람들을 보면 조금 한심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자기 관리에 실패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을 빼는 것, 특히 특정 부위를 날씬하게 만드는 것이 대단히, 아니 엄청, 아니 무진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고 있다. 어쩌면 성공적인 다이어트라는 것은 외국어를 하나 익히는 것만큼이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올해는 여기서 더 늘리지는 말아야지. -_-

-. 지붕뚫고 하이킥의 해리 캐릭터를 처음에는 무척 싫어했다. 건방진 안하무인 어린애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싶다만. 그런데 누구에게나 빵꾸똥꾸를 작렬하는 해리는 적어도 사람을 차별해서 업신 여기지는 않는다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저 사람은 잘 났으니까 혹은 저 사람은 이 집의 권력자니까,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저 사람은 무서우니까, 저 사람한테 잘 보이면 나한테 떨어지는게 있으니까 등등 해리의 건방짐은 그런 잣대 자체가 없다. 해리가 부잣집 아이라서 이런 캐릭터가 형성이 되었겠지만, 잘나고 못난 사람을 가리지 않는 건방짐은 어쨋거나 묘한 통쾌함도 가지고 있다. 권력에 대한 차별을 수반하지 않은 건방짐의 통쾌함은 특정 계층을 옹호하는 정치인이 생각나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빵꾸똥꾸를 그렇게 싫어했는지도 모르겠다.

-. 아이폰의 영향으로 여타의 스마트폰이 버스로 풀리면서 나도 엑스페리아를 하나 장만했다. 기기값이 1원인데 액정보호필름의 값은 그보다 5천배 비싼 5천원. 뜨악. 아무튼 처음으로 만져보는 스마트폰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어른의 장난감이라는 말이 딱 맞게 만지작 거리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덕분에 1주일동안 핸드폰만 붙들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깔았다 지웠다, 롬도 이거 깔았다 저거 깔았다 몸살을 해보고 결국 가장 심플하게 셋팅했다. 아이콘만 취향에 맞게 수정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1주일의 열병을 앓았더니 이제 맘이 좀 차분해 졌다. 당분간은 전화로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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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 Book.Cine Dossier.

Record? 2009. 12. 31. 09:23

가방 속에 항상 책을 넣고 다니는 사람들이 나는 좋다. 그 책이 소설이라면 더욱 좋고. 재테크나 처세술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굳이 시간을 쪼개서 읽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공포소설이면 의심할 것도 없이 당신은 분명 믿을만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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