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Record? 2008. 2. 14. 13:01


1. 아침부터 왠지 가슴이 묵직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구석구석에서 기분 나쁜 식은 땀이 난다. 남 앞에서 웃기가 참 힘든 하루다. 오늘 하루는 길어질 것 같다. 아무 생각않고 바쁘게 지내면 금방 내일이 되겠지. 상상은 기쁨이기도 하지만 절망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2. 감기는 벌써 1주째. 두통도 없고 열도 없고 몸살 기운도 사라졌지만, 차오르는 콧물과 폐를 압박하는 기침이 아직도 멈추지가 않는다. 세상이 흉흉하니 바이러스도 더 강력한 변종을 만들어내는가 싶다. 기침을 하면 가슴이 이렇듯 답답한데도 시간마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니 담배가 그만큼 무섭긴하구나 싶다.

3. 아침형 인간. 밤을 세우는 것은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도무지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나라는 인간이 미치광이 공동생활자 덕에 아침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8시에 기상하면서 7시부터 알람을 3분 단위로 맞춰놓고 자는 걸까. 3분 단위로 일어나 끄면서도 한시간을 침대에서 버티는 놈을 보면 똘아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덕분에 민감한 나는 아침밥을 먹게 되었다. 그냥 일찍 일어나고 말지뭐.

4. 점심시간에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고 아주머니께서 나누어 주는 초콜릿 두개를 손에 쥐고나니 갑갑한 상념에 사로잡힌다. 상술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괴롭히기도 한다. 싫다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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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파피용 - 6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열린책들

지인의 강추로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구는 죽어버리고 그 기술을 발전시킨 인간들도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폭력과 탐욕과 전쟁과 이기심만이 남아버린 작금의 세상. 한 과학자가 더이상 지구에 미래는 없다고 판단을 내린후 광자를 이용한 범선 형태의 우주선-파피용을 만들어 그 안에 십수만명을 싣고 새로운 지구를 찾아 100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동안 우주여행을 시작한다. 정치인과 군인, 종교인이 인류를 망쳐버리는 제1주범이라는 생각에 그들은 단 한명도 태우지 않았지만, 아무리 착한 놈들만 골라도 결국은 인간인 것을.... 파피용의 탑승자들은 새로운 지구를 발굴하기 위한 1000년의 시간동안 우주선 안에서 인류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복한다. 범죄가 생겨나고 법령을 만들고 권력자가 태어나고 편을 가르고 전쟁이 일어나고 종교가 기승을 부리고 다시 암흑기가 찾아오고 공포정치에 뒤이은 잠시간의 평화시대. 그리고 또다시 반복.


베르베르의 소설은 '개미' 밖에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파피용은 베르베르라는 이름이 선사하는 신선함에는 한참 못 미치는 소설이었다. 지구를 떠나 다시 지구를 찾아나선다는 내용도 그리 낯설지는 않았으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류의 역사도 너무 평범했다. 작가의 주관이 거의 결여되다시피하여 마치 역사책을 다시 한번 짧게 요약한 것 같은 문체는 독자가 무언가를 느끼기엔 너무 부족해 보였다. 중간중간 긴장감을 자아내기 위한 작위적인 설정-특히 고양이를 찾으러가는 부분-은 '이거 뭐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짜증이 나기도 했고...

쉽게 읽혀 술술 넘어가 가볍게 읽기에는 좋겠지만, 기대에 비해 가벼운 듯해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소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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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손톱 - 10점
김종일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1. 소설 손톱은.
딸을 유괴살인으로 잃고 남편과 이혼한 네일 아티스트 홍지인은 어느 날부터인가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꿈에서 그녀는 추악한 범죄를 일삼는 사이코패스, 존속살인자, 고문수사관이다. 그리고 악몽에서 깨어날 때마다 끔찍한 고통만 남긴 채 하나씩 사라지는 손톱. (출처: 알라딘)

2. 나이트 메어.
꿈속의 공포가 현실이 될 때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잠을 덜 잘 순 있어도 자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웨스 크레이븐의 나이트메어에서는 신세대를 억압하는 구세대의 도구로 악몽이 도입되었다면 김종일의 손톱에서 그것은 좀 더 개인적인 죄의식을 물고 늘어진다. 소설 손톱에서는 스스로 잊고싶어하는 지난날의 과오가 현재의 자신을 괴롭히는 정신분열적인 악몽으로 나타내고 이를 손톱이 빠진다는 고통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빠진 손톱은 의식의 저편(꿈)을 현실로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의식이 물리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 공포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설정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이 아닐까 한다.

3. 김종일의 소설에서는.
일관된 적개심이 드러난다. '몸'도 그렇고, 한국공포문학 단편선에 실린 '일방통행'이나 '벽'도 그러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현실의 음습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범죄들에 대한 적개심이고 이는 인물들의 대화나 묘사를 통해서 나타난다. 김종일의 소설에서 타인에 대한 생각을 풀어낼 때는 대개 욕지거리를 포함하여 무한한 불신과 적대감을 담고 있다. 이 부분이 굉장히 묘한데 그냥 씨팔년, 개새끼, 썅년 등의 욕설이 아니라 놈/년 같이,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일반화한 말투를 내뱉는 주인공들을 보면 마치 개인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전체적인 적개심을 느낄수가 있고 이는 그동안 김종일의 소설에서 나타난 주제의식과 굉장히 잘 부합된다. 이것을 문체라고 부를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4. 타인의 눈을 통해서.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생명체 중에 인간만큼 개인적인 종족도 없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 하더라도 온전히 그것을 느낄수는 없다. 손톱은 타인의 몸에 빙의되어 그 사람이 간직한 죄의식과 그로 인해 살해당하는 순간의 고통을 제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결과 손톱이 뽑혀져 나간다. 타인의 고통과 죄의식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죄의식을 깨닫게 만드는 것. 이런 설정을 통해서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어두운 거대 공포는 개인적인 것이 되고 그럼으로써 사회의 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매일 밤 다른 이가 되어서 저지르는 살인의 비쥬얼은 끝내준다. 눈알을 뽑아내고 손톱으로 살을 후벼파고 목을 긋는 등 선혈이 행간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손톱은 전작 '몸'만큼이나 강렬하다. 그리고 이런 살해의 강도가 심해질수록 죄의식에 대한 강도도 더해진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타인이 되어 살해당하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공격성이 아닌 피해자의 절박함인 것이다. 고어와 이 소설의 주제의식은 이렇게 만난다. 한마디로 영리하고 재미있다.

5. 선의 끝은 악이요, 악의 끝은 선이니.
소설의 결말이 다소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 죄를 외면하지 않고 인식하고 새로 태어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의외로 신선하다. 그리고 악몽을 통해 개개인이 회개하는 행동은 각자 다 다르다는 것도 이 소설의 매력이다. 죄라는 것은 그것을 저지르는 것만큼이나 용서받는 것도 개인적이니까 말이다.

6. 김종일의 '손톱'은.
이거저거 다 떠나서 재미있는 소설이다. 처음 책장을 넘기면 그냥 끝까지 후루룩 읽을 수 밖에 없는 그런류의 소설이다. 이종호의 작품들도 그렇지만 매드클럽 작가들의 소설이 나올 때마다 이젠 가슴졸이며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음 작품은 뭐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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