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불신지옥

HorroR-movie 2009. 10. 7. 15:19



종교란 개인의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행복은 종종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는 것에서 부터 작용한다.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공포를 부추겨 전도를 행하는 기독교 뿐 아니라 두려움에서 벗어나 개인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여타 종교도 별반 차이는 없다. 그런 이유로 종교에 기대고 믿음을 갖는 자에게 그 믿음에 반하는 자들은 경계하고, 처단해야할 대상이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망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불신지옥이 그리는 공포는 거기에서 발생한다. 행복이라는 나의 믿음을 해하려 하는 것들은 무엇이든 짓밟아 버리는 욕망의 지옥도. 거기서 영화는 한걸음 더 나아가 행복=믿음 이라는 결과론적인 토대아래 신을 억지로 만드는 행위까지 등장하며 믿음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에 인간의 가치관이 얼마나 쉽게 전복이 되는지, 그것에서 또 얼마나 간단하게 권력이 역전되고 인간이 쉽게 잔악해지고, 나약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쇼킹 효과를 남발하는 싸구려 공포영화와는 달리 불신지옥은 관객에게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며 차곡차곡 쌓아올린 긴장감을 그럴싸한 비쥬얼과 이야기로 옥죄고,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며 인간의 욕망을 한껏 풀어낸다. 화려하게 욕심부리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현실성을 획득하여 공포감을 자아내는 불신지옥은 간만에 만나는 진짜 공포영화다. 그것의 외피도 그렇고 함유하고 있는 이야기의 의미도 그렇고. 극장에서 감상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제목: 불신지옥 (2009)
감독: 이용주
배우: 남상미, 김보연, 류승룡, 심은경
AND

1Q84 11Q84 1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가족으로 인한 어린 시절의 불우한 과거를 트라우마로 안고 있던 소년/소녀.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던 왕따 소녀 아오마메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 유일한 소년 덴고. 아오마메는 덴고에게 마음을 열고 그의 손을 꼭 붙잡는다. 이외에 서로 어떠한 대화도 주고 받은 적이 없는 그들은 20년이 지나는 시간동안, 마음 속에 손을 잡았던 그날을 기억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어떤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껍데기 같은 삶을 살던 그들의 세계가 무언가를 계기로 변화하고 엄청난 사건과 함께 예상치도 못한 대연애가 시작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는 1984년 도쿄라는 시공간이 1Q84년(Q는 일본어로 9와 발음이 같다)이라는 시공간으로 변화되면서 벌어지는 판타지 아닌 판타지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현실에 어느 순간 두개의 달이 떠오르면서 마법처럼 스르륵 펼쳐지는 판타지의 공간은 현실 세계와 조금도 다르지 않으면서 극도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하루키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정말 대단하다.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있고,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극도로 거대한 메타포가 존재하고 아주아주 은밀하고 소소하지만 엄청난 연애가 있다. 방대한 이야기라 줄거리 요약이 별 의미가 없을 이야기지만, 어쨋건 연애 소설이다.

하루키 소설은 성장소설과 연애소설의 어디쯤에 위치한다. 쿨하고 시니컬하지만, 재기넘치는 문장 속에 펼쳐지는 초현실적인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에 대한 상실과 회복의 이야기. 돌이켜보면 언제나 상처는 치유되고 시간은 나아가고 작지만 희망적으로 끝을 맺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그 과정이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기에 사랑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은 어쨋건 나아갈수 있다라는 희망은 글자 그대로의 희망이라기 보다는 가슴이 펑 뚫려 버린 듯한 그리움과 인간이 평생지니고 다니는 그림자와 같은 고독을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쿨한 주인공들은 받아들이고 세상을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쿨하지 못한 나는 언제나 쓸쓸했다. 그토록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언제나 다른 세계 속으로 데려가 버리니까. 어쩌면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도 활자 속에 표현되는 말들처럼 아무렇지 않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1Q84는 어쨋거나 여느 때의 하루키의 작품처럼 젊고 쿨하고 시니컬하고 방대하고 아리고 재미있다. 인물/상황 묘사의 참신함도 여느 때의 하루키의 작품처럼 가슴을 콕콕 쑤신다. 한가지 다른 점이라면 세상 모든 일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능력자이면서 평범하다고 주장하는 얄미운 주인공들은 없다. 처음으로 자신은 특별하고 특수한 인간이라고 시작하는 하루키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얄밉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드라마틱하다. 초현실적인 공간을 그렸던 전작들 중 어떤 것보다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적어도 모자라진 않을 것이다.

덧붙여.
-. 하루키의 소설의 대화 장면을 보면 무언가 의사 전달을 한 후 상대방이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눈을 감고 있다거나 보이지 않는 창밖의 한점을 멍하니 응시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질문자는 상대방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가 생각할 시간을 차분하게 기다려 준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발을 디딜 때 동공이 확대할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매사의 대화도 그렇게 상대방이 생각할 시간은 필요하다. 비단 대화 뿐 아니라 어떤 사건도 마찬가지. 그러나 우리 삶에서는 그렇게 기다려 주는 여유가 좀처럼 발휘되는 일이 없다.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부여받지 못하기에 그 빼앗긴 사색의 시간만큼 피로함이 쌓이는 것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러한 시간을 부여해 주고 있을까, 혹은 내가 생각할 만큼의 시간의 권리를 누군가로부터 빼앗겨 피곤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어쨋거나 하루키는 참 대단한 작가다.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물어도 별로 친절히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지만.
AND

내 사랑 내 곁에6점
박진표 감독의 내 사랑 내 곁에는 루게릭 병에 걸린 남자와 죽음을 포장하는 장례 지도사 여자와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한줄의 줄거리 만으로도 영화가 훤히 보이는 특성상 과연 관객의 눈물을 얼만큼 쥐어짜줄지가 궁금했다. 루게릭 병에 걸린 남자는 분명 죽음을 맞을 것이고, 장례 지도사 여인은 그의 시신을 치장하고 저 세상으로 보내줄 것이다. 어찌보면 주인공의 죽음을 통해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영화는 공포영화만큼이나 가학적인 장르라고 생각한다. 결국 관객은 주인공이 죽는 과정을 두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내내 지켜볼 뿐이니까.

가학적이어도 좋고, 뻔히 보이는 줄거리여도 좋고,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노골적인 이야기여도 좋고, 루게릭 병이라는 소재만을 극도로 이용하는 소재주의 영화여도 나쁠 것은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화는 그걸 보러온 관객들이 만족하도록 충분히 눈물샘을 자극해 준다면 제 역할은 다 한 것이다. 그러나 내 사랑 내 곁에는 관객의 공감을 충분히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안이하게 흘러간다.

루게릭 병에 걸린 종우와 장례 지도사 지수는 종우의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된다. 두번의 이혼을 겪었다는 지수에게 이미 루게릭 병이 진행되어 걷지도 못하는 종우가 대시를 하고 사귀게 된다. 그들이 사귀기로 결심한 이유 같은 내면의 심리를 관객이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영화는 관객이 그 심리의 여백을 사색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랑하게 된 연유를 직접 들려주지도 않는다. 따라서 관객은 영화의 시작부터 둘의 사랑에 공감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게 된다. 그러니 이후에 벌어지는 신파의 에피소드는 관객에게 먹히질 않는다.

그러나 이미 영화가 공개되기 이전부터 이슈를 만들어냈던 김명민의 감량 투혼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근육이 움직이는 않는 처절하게 마른 몸이 보여주는 안쓰러움은 가슴을 쑤시기도 하고, 그런 몸으로 연기하는 김명민의 연기는 언제나 그랬듯 훌륭하다. 그와 앙상블을 이룬 하지원의 연기도 발군이고. 그러니 영화가 조금 미흡하더라도 두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가슴 아픈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건 영화 전체의 힘이 아니라 순전히 두 배우의 공이다. 두 사람의 연기가 없었다면 내 사랑 내 곁에는 정말 볼품 없는 영화였을 것이다. 눈물을 짤 수 있는 소재와 좋은 배우들이 있었음에도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내 사랑 내곁에는 좀 아쉬운 영화다.

덧붙여.
-. 종우와 지수의 사랑이 이루는 큰 꼭지보다, 중환자가 모여있는 6인실 인물들의 사연이 오히려 더 절절한 면이 있다. 박진표 감독은 인물의 이야기에 깊게 들어갈 때보다 표면을 슬쩍 스칠 때가 힘이 생기는 것 같다.

-.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 모기를 쫓아내는 종우의 판타지는 휠체어에서 가볍게 일어나던 오아시스의 공주의 판타지와 비교해보면 참으로 밋밋했다.

제목: 내 사랑 내 곁에 (2009)
감독: 박진표
배우: 김명민, 하지원, 남능미, 임하룡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