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남쪽으로 튀어! 1 - 10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은행나무
아나키스트인 부모로 인해 도쿄에서 졸지에 오키나와에서도 배타고 한참 더들어가야하는 깡촌 섬마을로 이사온 12살의 지로는 생각한다. TV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어색하고 만화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상점가가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노동을 하는 것이 따분하고 짜증나기는 하지만 소유욕이 없는 친절한 사람들이 가득 넘쳐나고 진심으로 학생들과 하나가 되어 있는 선생님들과 연두빛의 푸르고 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여기서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겠구나'라고.

알게 모르게 국가와 매스 미디어로부터 주입받고 있는 사상들, 우리가 상식이라고 부르고 또한 알고 있는 것들이 과연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라고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물론 소설 속의 우에하라 이치로처럼 궁극의 아나키스트적인 마인드와 행동을 보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나'를 위해 옳은 것인가는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직접 경험해 본 것에 비해서 간접적으로 섭취한 것들이 많아서 오히려 더 겁이 많고 행동함에 있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닐지...

'남쪽으로 튀어'의 광고를 읽어보면 마치 굉장히 웃긴 것처럼 포장을 해 놨는데, 사실 공중그네와 인더풀 같은 유머를 지니고 있는 책은 아니다. 남쪽으로 튀어는 이제 사물과 사람을 보는 시각을 갖추기 시작한 소년 '지로'의 성장소설이고 폭소를 자아내지는 않지만 흐뭇하고 유쾌하다. 또한 진지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으며 유토피아를 말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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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이프 - 10점
이종호 지음/황금가지
매트릭스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네오라면 과연 현실을 더 알고 싶었을까'라고 생각했다. 나라면 그냥 매트릭스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일상을 살아갔을 것 같다. 지금도 많은 괴로운 현실에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종호님의 소설 '이프'는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너무나도 태연하게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폭력 속에서 허덕이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쓸쓸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날 '스벵가리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첨부된 메일이 도착하고 여기에는 누군가의 생생한 자살현장이 담겨져 있다. 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봉인된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그 기억이 해제되는 순간 자살을 한다. 우연히 자살현장을 연속적으로 목격하게 된 기자 도엽이 이 사건속으로 점점 발을 담그게 된다.

메일을 통해서 전달되는 공포, 기괴한 영상의 공포, 살인을 부추기는 인터넷 사이트,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쇄자살 사건, 자살과 구원을 담보로 모인 집단, 알수 없는 괴한의 전화, 화면을 뚫고 나오는 귀신 등등의 온갖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소재들로 채워져 있지만, 이 하나하나의 소재를 기가막히게 잘 엮어내고 있어 읽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개개의 사건사건 하나하나가 살아서 평행으로 나가는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다른 사람한테는 보이지 않지만 특정인간에게만 보이는 동영상이란 소재에서 과연 이걸 마지막에 현실적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무지하게 궁금했는데, 역시 결론은 그것밖에 없었고 그 평범하고 수많은 영화에서 차용되었던 소재가 이런 식으로 결합하면 또 훌륭하게 탈바꿈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후반부도 짤막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고 있어서 오히려 여운이 더 남는다.

제목이 말하고 있는 '만약에...'는 만약에 내가 좀 더 살 수 있다면, 만약에 그때 내가 좀 더 잘 할 수 있다면,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등등의 언어로 생략된 말을 확장해 볼 수 있겠지만, 그 '만약에'가 만약에 실현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이 반복될 뿐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기에 '만약에'라는 공허한 절규로 밖에 들리지 않아서 책장을 덮고 난 뒤에 왠지 더 슬프고 쓸쓸해진다.

덧붙여.
- 번번한 글하나 쓰지 못하고 사채업자에 쫓기는 소설가, 에이즈에 걸린 여성, 뚱뚱한 외모를 비관하는 짝사랑녀, 아버지의 성폭행과 폭력에 얼룩진 여성, 성적을 비관하는 학생이 한명씩 자살을 하는데 역시 성폭행 이야기가 가장 마음이 아팠다. 수십년동안 폭력에 시달린 사람이 과연 어떻게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핑 돈다.

- 영화제작 판권이 팔렸다고 하는데 어떤 모양새를 하고 나올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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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 10점
김종일 지음/황금가지
제3회 황금 드래곤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김종일님의 공포 소설 '몸'은 독자가 소설 속의 인물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도입부분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다 읽을 때쯤 이런 설정은 이 책의 최대 단점이 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나 강박관념, 죄의식 혹은 트라우마가 극단적인 이미지로 확대되어 고어를 동반한 살인이나 과도한 신체변형으로 발전되는 이야기 방식은 이토준지의 공포만화와 대단히 비슷하고, 소설이 그리고 있는 이와 같은 비쥬얼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을 자아내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만족할만한 훌륭한 마무리를 지어준다.

작가가 책을 쓰면서 이 책을 읽을 독자들한테서 날아올 질타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을 썼는지 본문에 '사실 이런 상황은 어떠어떠한 영화나 소설에서 보았던 것 같다'라는 문장을 여러곳에 써놓고 있는데, 이게 매우 소심해 보이고 거슬린다. 어떤 영화나 소설에서 모티브나 이미지를 따왔더라도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미있기 때문에 그게 그리 신경쓰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가가 오히려 미리 변명하듯이 설명해 놓으니 무척 구차하게 들린다. 좀 더 떳떳해도 될 듯한데 말이다. 더욱이 이런 식의 변명은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아우르는 큰 축의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여 정말로 변명처럼 느껴진다.

이 책이 취하고 있는 이중삼중의 액자구조는 너무 많아 조잡하게 느껴지고 스스로 밝히듯 여타 호러영화와 소설에서 많은 요소를 차용했으면 소설의 내용이 현실이 됐을 때가 가장 끔찍하다는 "매드니스"의 차용을 빗겨가기 위해 최소한 그걸 벗어날만한 뛰어난 이야기를 마지막에 배치했어야 하지만, 결국 그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정말 커다란 단점은 주인공이 결국 죽게되는 이유가 남의 이야기를 훔쳐서라는 것과 동일선상에 놓여있고 이런 차용을 작가 스스로 단죄하고 있으므로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게 꿈이었고 다시 소설의 처음으로 회귀하는 에필로그는 없는 것이 나을 뻔 했다. 세상에 꿈이었다니...

그리고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 반복되는 단어의 사용은 읽는 이로 하여금 버거움을 느끼게 한다. 소설의 에피소드의 한편, 한편이 다시 소설이 되는 구조상 앞의 상황을 그대로 가져와서 같은 문장이 다르게 받아들여 지는 것은 좋았는데도 너무 남발된 '기시감'이라는 단어와 '나의 뇌의 일부분을 도려내고 싶었다' 등의 동일반복은 아무래도 그와 같은 구조 때문이라는 설명은 어려워 보인다.
 
황금드래곤 문학상의 당선이유에 대해 이 책의 장편으로서의 서사 구조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이 책이 놓치고 있는 결정적인 부분이 아닌가 싶다. 단편 각각의 에피소드는 재미도 있고 훌륭하지만 이를 아우르는 결말 부분은 억지로 조각을 짜맞추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작가가 쓴 공포소설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배경이 흔히 주변에서 보던 곳이어서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대전에서 상경하는 버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던가, 오뎅에 떡볶이를 먹는 주인공들, 군대에서 실연당한 과거 등등의 배경이 친숙한 곳이어서 더 반가웠다. 이거야 뭐, 내가 국내소설을 너무 안 읽어서 그런 것일수도 있지만, 소설이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의 어두운 면을 소재로 삼아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현실성을 더하여 새롭게 다가온다. 그만큼 더 몰입하기도 쉽고.

감상을 쓰고 보니, 너무 단점들만 두드러진것 같은데 다시 한번 밝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는 대단히 재미있게 읽었다. 펑하고 사람의 머리가 터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다가왔던 '귀'가 특히 재미있었다. 인터넷에서 굉장한 인기작가라고 하는데 신인 작가인 김종일 작가님이 앞으로 더 좋고 참신한 소설들을 많이 써주셨으면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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