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1셀 1 - 10점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죠지 A. 로메로와 리처드 매드슨에 바친다'라는 거창한(!) 헌정사와 함께 시작되는 스티븐 킹의 'cell'은 작가의 이름 뿐 아니라 이 작품이 경배해 마지않는 시체 3부작과 나는 전설이다에 결코 묻혀버리지 않을 만큼의 위력적인 진행과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듯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작품이다.

'셀'은 어느날 갑자기 핸드폰(cellular phone)을 통해서 기이한 전파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좀비가 되고 핸드폰을 꺼내든 모든 사람들이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버리는 아비규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의 끈을 놓치 않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 혹은 살 곳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역시 스티븐 킹이야!'라고 왕에게 감사를 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어떤 좀비 영화 속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강렬함과 인간의 본성을 절묘하게 포착하는 이야기와 캐릭터의 성격을 잘 살려서 독자로 하여금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의 무질서를 공감하게 하는 문장이다.

이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독자는 그 강력한 비쥬얼에 바로 사로잡혀 버린다. 스크린이 아닌, 혹은 독자의 상상력이 아닌 100% 활자로 인해 눈앞에 펼쳐지는 듯이 묘사하는 이 소설의 도입부는 정말로 강렬하고도 압도적이다. 좀비들은 대개 어느날 갑자기 생겨나고 또한 깨무는 행위를 통해서 종족이 증식해 나가고 느릿느릿한 동작, 그리고 지능이 없다는 개념 때문에 역동적인 강렬함을 갖기가 힘들다. 그러나 셀은 좀비와 H.G. 웰즈의 우주전쟁식의 동시다발적인 재앙을 아우르면서 좀비물 역사상 가장 힘이 넘치고 역동적인 오프닝을 활자를 통해서 생생히 연출해 낸다. 현재 이 소설이 어느 정도로 영상화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라이 로스가 바보가 아닌 이상 소설에서 묘사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 똑같이(!)만 만든다면 아마 좀비를 다루고 있는 영화사상 가장 강렬하고도 강력한 비쥬얼을 가진 오프닝이 될 거란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 정도로 소설의 도입부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핸드폰을 통해서 좀비가 되는 이유를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밝히진 않겠지만, 인간의 뇌가 제로(0)가 됐을 때 폭력이라는 본능만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얘기는 굉장히 설득력을 갖고 또한 컴퓨터와 인간의 진화가 항상 비슷한 양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전체적인 이야기가 굉장히 가슴에 와 닿았다. 신은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컴퓨터라는 기기를 만들었지만, 그 발전해 나가는 양상과 바이러스라고 불리우는 병원균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것은 기기와 인간이 똑같이 매년마다 백신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용어상의 공통점이 아닌 그 본질적인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좀비가 양산되는 폭발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인간이 어떤 환경에도 적응해 나가고 그럼에 따라서 계층이 생겨나고 또다른 그룹이 탄생되듯이 이 소설의 좀비 속에서도 또다른 종족이 탄생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나는 전설이다'의 세계가 건설되기 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나간 듯하고 그래서 책머리에 쓰인 헌정사에 고개가 끄덕끄덕하게 된다. 그래서 '셀'은 폰사이코라는 용어에서 폰피플이라는 용어로 진화해 나가는 것처럼 다수와 소수의 경계,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를 '나는 전설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던 리처드 매드슨 소설의 프리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좀비의 입을 통해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등의 킹이 그리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이토준지의 세상만큼이나 괴상하고 기괴하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독자의 귀를 간지르는 올드팝(책에서는 음악의 제목을 모두 한글화 하였는데 개인적으로 원어 제목을 그대로 썼으면 오히려 독자가 쉽게 공감했으리라 생각한다.)은 서정적이라 한층 더 초현실적인 상황을 만들어낸다.

셀을 읽으면서 '역시 왕은 왕이다'라는 생각밖에는 할 수 없었고, 심리적인 공포감이 아닌 활자로 시각적인 공포감을 자아내는 이 소설이 영상화된 모습을 빨리 스크린으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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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골의 꿈 - 전2권 세트광골의 꿈 - 전2권 세트 - 10점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손안의책(사철나무)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세계관이라고 하면 '세상의 모든 한 점은 계속해서 확대해 나가면 그 안에 인간 혹은 또다른 생명체가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사회를 이루고 생활하고 있을거라는 것'이다. 그것은 지우개의 한귀퉁이일 수도 있고 볼펜 속에 담겨진 잉크 한방울 속일 수도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볼 수 있는 미시적인 영역들은 점차 확대되었고 그에 따라 마이크로에서 나노미터로, 전자/원자에서 그보다 작은 쿼크의 범위까지 넓어졌다. 이와 같이 과거에 정의됐던 개념들은 하나하나 무너졌으며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생각들은 지구가 네모가 아님을 깨달았듯이 또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점을 확대했을 때 그 속에 또다른 인간이 살고 있다해도 그닥 신기한 노릇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세계가 무한정 반복되는 매트릭스를 좋아하고 은하계라는 것이 작은 구슬에 불과하다는 맨인블랙의 결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끔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사춘기 때 자아에 대해 인지하게 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만 그 시절이 지나 사회에 내던져지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런 물음들은 조금씩 희석되어지고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혹 생각하더라도 그런 철학적인 물음에 메달리고 있을만큼 현재의 생활은 한가하지가 않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종교를 믿음으로서 누군가 '만들어' 놓은 세계관에 자신을 맞춤으로서 그런 물음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과학에 기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세계의 죽음이라는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에 대해서는 시침 뚝 떼고 살아간다. 가끔씩 이런 생각을 떠올리면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거라 생각이 되기도한다. 어차피 나와 함께 이 땅에 발을 딪고 있는 세계의 어떤 한 사람도 사람의 사후가 어떤 것인지, 사후가 없는건지, 있다면 죽은 후의 나는 살아있을 때의 '나'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서로들 시치미를 떼고 살아간다. 모르는 것(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서 말이다. 하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모르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

방석탐정 교고쿠도 시리즈의 이야기는 정확히 이런 세계관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교고쿠도는 오래된 책을 판매하는 고서점의 주인이자, 빙의된 인간에게서 귀신을 쫓아주는 퇴마사에서 제사장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귀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인식하는 범위를 넘는 것에 대해서 초자연적인 현상 혹은 귀신이나 신 혹은 요괴라는 범주로 몰아 넣을 뿐이지 사실 세계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없다'라는 것이 그의 세계관이다. 그러므로 그가 행하는 퇴마의식은 종교에 빚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잠재의식 및 가치관을 바탕으로 트라우마를 인지하게 하고 그것을 인식시킴으로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괴담에서 출발하는 교고쿠도 이야기는 항상 과학이나 심리학등의 학문적인 결말로 끝이 난다. 이와 같이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괴담과 과학의 만남은 교고쿠도 시리즈의 최대 매력점이다.

우부메의 여름과 망량의 상자를 거쳐 발표된 방석탐정 교고쿠도 시리즈의 세번째 이야기인 '광골의 꿈'도 이런 세계관 속에서 펼쳐진다. 광골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광골이란 우물에 갇혀있는 원한이 서려 있는 뼈를 말한다. 아케미에게 어느날 8년전에 자신이 목졸라 죽이고 목을 잘라버린 남편의 혼령이 나타나게 되고 그녀는 그를 다시 한번 목졸라 죽이고 목을 베어버린다. 하지만 다음날 그는 또 나타나고 그 학살 행위를 반복하게 되고 초조해 한다. 이와 관련하여 바다에 금색 해골이 등장하면서 사건이 복잡해 지기 시작한다. 정말 여러가지 사건이 등장하고 그것이 결국 하나로 뭉치면서 사건이 해결되는데 사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은 사건이 너무 많이 등장하는데에 비해 독자가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불충분하여 추리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부족한 작품이다. 독자는 그저 책 속의 교고쿠도 이외의 모든 인물들처럼 그가 설명하는 방식을 그냥 따라갈 수 밖에 없다. 또한 일본의 여러 괴담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생경한 용어들이 너무 많이 튀어나오므로 중간에 맥을 놓치게 되어 '읽는 재미'를 잃을 수 있는 여지도 있지만 괴담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과학을 바탕으로 한 추리소설로 엮어나가는 작가의 역량이 탁월하여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을 것이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은 호러적인 요소가 풍부한 괴담이야기면서 학문적으로도 배울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요소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광골의 꿈도 정확히 그러한 소설이니 차분히 읽어보길 권한다.

첨언.
-.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망량의 상자'였다. 이 망량의 상자라는 것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만한 어이없는 것이어서 그 발상에 정말 탄복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주석이 너무 많아 읽는 흐름이 끊긴다면 95% 정도의 주석은 읽지 않고 넘어가도 줄거리를 이해하는데에 큰 무리는 없으니 생략해도 좋겠다. 그리고 그 많은 주석을 다 읽는다고 하더라도 어지간히 괴담이나 일본 역사에 관심이 없다면 아마 다 읽고 나서 단 한개의 주석도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렴 어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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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눈이 아플 정도로 흩날리는 4월의 어느날, 모자라는 실력에 죽자고 노력해서 좋아하는 선배가 입학한 무사시노 대학에 입성한 우즈키의 4월 이야기. 이와이 슌지의 '4월 이야기'는 그 짧은 러닝타임으로 인해 볼 때마다 왠지 더 보여줬으면 하는 조바심이 생기지만, 그래서 또 깔끔하게 입가에 웃음을 남기고 끝나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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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이야기는 보는 사람에게 일종의 행복바이러스를 퍼뜨리는 힘이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우즈키가 타인과 이제 막 관계를 맺어가기 시작하는 부분들을 보여준다. 동기들과의 어색한 자기소개 시간을 거쳐서 서먹서먹하고 서투르지만 대학에서 친구라는 것을 하나씩 만들어간다. 또 자기가 만든 음식을 이웃 사람에게 먹여주기도 하고 동아리에 가입해서 선배라는 것도 만든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그녀 일생의 키워드인 야마자키 선배와의 재회에 성공한다. 그리고 끝난다
.

무언가 이룰'것 같은' 순간에 영화가 끝나버려서 이 영화는 시작의 설레임과 기쁨만을 간직하고 있다. 마치 12부작 미니시리즈를 1부만 보고 끝난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런 느낌이 좋다. 앞으로 이야기에서 파생되어질 수많은 이야기들은 각자의 상상이니까. 혹시 야마자키 선배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어떻하지, 우즈키는 대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금방 체여버리면 어떻하나 등등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은 영화 밖의 이야기다. 그래서 설레임만 간직하고 있는 이 영화가 아주 조금은 얄밉기도 하지만 그래도 왠지 이 DVD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 안에 행복이 가득 들어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

덧붙여
.
1.
마츠 다카코가 약간 뚱한 표정으로 클랩보드를 들고 있는 저 스틸은 너무 좋다. 예전에 영화잡지에 저 스틸만 보고도 가슴이 왠지 두근두근 했으니까
. 자 이제 시작이라구하는 느낌?

2.
마지막 부분에 야마자키 선배가 우즈키에게 우산을 주고 우즈키는 '돌려드릴께요'라고 말한다. 야마자키는 됐으니까 그냥 가지라고 하는데, 우즈키는 '返しに
ます(돌려주러 올께요)'라고 말한다. 그냥 '返します(돌려줄께요)'라고 해도 될 걸 굳이 ます를 붙여서 '오고 싶다'라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자막에서는 그걸 그냥 '돌려줄께요'라고 한 부분이 왠지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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