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언- 악취미들

See-booK 2006. 11. 1. 11:08
악취미들악취미들 - 8점
김도언 지음/문학동네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다가 항상 위에서 반짝반짝 대던 '악취미들'이란 책의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일단 구입했다. 악취미들이라니 뭔가 나랑 취향이 맞는 얘기가 아닌가.

김도언의 악취미들은 10개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다. 나중에 집필한 작품부터 수록되어 10부터 1까지의 악취미가 있는데, 김도언님의 말씀에 따르면 최근에 발표한 작품부터 독자가 읽게하고 싶었다고 한다. 나중에 거꾸로 다시 읽으면 새로운 맛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다 읽고 난 지금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악취미들에서 말하고 있는 악취미들이란 취미라고 부르기 보다는 그 사람의 나쁜 취향 혹은 악의적인 외부로 부터 발생된 어두운 마음이라고 불러야 좋을듯 싶지만, 그런 취향을 굳이 취미라고 붙인 작가의 의도가 오히려 더 악취미적이란 생각이 든다.

악취미는 온갖 불건전한 상상들로 가득차 있다. 죽은 동생의 아내를 사랑하는 형, 사병을 성추행하는 장군, 택시에 아내를 태우고 매춘을 하는 남편,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하는 아들, 잘난 형을 동경하다 파멸하는 못난 동생, 잔혹한 것에만 매력을 느끼는 젊은 여성, 아들을 죽인 아버지 등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얘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뭔가 굉장히 불편하다.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고 흡입력도 있지만, 읽기가 힘들다. 모순되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이 책은 정말 그렇다.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은 자신들의 불온한 상상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그 극단으로 밀어붙여 나가는데 그 상상이란 것이 열등감 혹은 죄책감이나 본능에서 기인한 것이다. 특히 열등감을 가진 주인공들이 나온 이야기들은 그것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이입이 되어 '아~ 정말 괴롭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한 능력없는 소설가가 여기저기 전화해서 술주정하는 '고통의 관리'의 경우 그 치졸하고 아니꼬운 대사를 읽다보면 이건 흡사 나의 모습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어 뜨끔하기 까지하다. 홍상수 영화의 기분 더러운 버젼을 보는 느낌이랄까.

이 책을 인간의 본성과 고통에 대한 처절한 기록이라고 한다면 훌륭한 책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지만, 도무지 편한 마음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읽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소설이다. 아마 앞으로 김도언님의 책은 쉽게 손이 나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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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피스트는 매우 단순한 크리쳐물이다. 외딴 술집에 피투성이의 남자가 들어오고, 정체모를 괴물이 당신들을 습격하러 온다며 당장 모든 문을 막으라고 한다. 곧이어 들이닥친 괴물에 의해 남자의 목이 날아가고 술집은 아수라장이 되며 이런 식으로 술집안의 사람들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하나씩 죽어나간다
.

이런 식의 폐쇄된 공간에 갇혀 지능이 있는 외부의 괴물들에 의해 공격을 받는 영화라면 그 목표하는 바는 강력한 긴장감으로 인한 공포유발이다. 피스트의 괴물은 똑똑하고 굉장히 빠르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술집의 벽 뿐 아니라 바닥과 천장을 통해서 손이 불쑥불쑥 나와서 희생자들의 배를 가르고, 머리를 부수고, 다리를 자르고 하는 등의 고어장면을 연출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긴장감이 조성되지만, 캐릭터들의 어설픈 코미디가 그런 긴장감을 반감시킨다. 각본가인 마커스 던스탄은 이 영화가 이블데드와 다이하드를 믹싱한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했는데, 막상 영화는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독 솔져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서 코미디가 끼어드는 지점에서 약간 어정쩡한 느낌을 받게 되지만, 그래도 강력한 고어장면이 스피디하게 연출이 되어서 꽤나 만족스런 지점에 도달한다. 괴물들이 얼마나 빠른지 순식간에 얼굴가죽을 벗겨내는 장면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다만 한가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은 괴물들이 너무 빨라서 카메라도 그에 따라 덩달아 빨리 가려고 했는지 화면이 너무 흔들려서 약간 어지럽고 좀처럼 인물들의 동선을 깨끗하게 알아볼 수가 없다. 고전 크리쳐 영화에서 괴물의 모습을 오랫동안 클로즈업으로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하지만 그 미덕을 지키기 위해 카메라까지 흔들어댈 필요는 없다.


피스트도 여타 영화와 마찬가지로 왜 이런 괴물이 만들어져 졌는지, 어디서 왔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다. 그러므로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당연히 시리즈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시리즈가 이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준다고 주저없이 다시 볼 것이다
.

첨언.
-. 피스트는 약간 특이한 방식으로 탄생이 되었다. 프로젝트 그린라이트라는 컨테스트를 통해 만들어졌는데, 프로젝트 그린라이트 컨테스트는 재능있는 신인들을 양성하고자 멧 데이먼과 벤 에플렉, 아메리칸 파이의 제작자인 크리스 무어와 미라맥스가 공동설립한 라이브 플래닛에서 2000년 부터 실시한 컨테스트로 '피스트'는 그 세번째 시리즈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그 해에 감독상을 수상한 '존 걸라거'에 의해 영화화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메이킹 필름은 '프로젝트 그린라이트'라는 제목으로 HBO를 통해서 방영되었다고 한다.

제목: 피스트 (Feast, 2005)
감독: 존 걸라거
배우: 발타자르 게티, 제니 웨이드, 크리스타 앨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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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야시 - 10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노블마인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는 '검은집' 이후로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지라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짚어들었다. 하지만 읽기전 한가지 알아두어야할 점은 이 책은 '호러'에 무게중심이 쏠려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재미있고 추천할만한 소설임에는 분명하지만 극의 진행이 매우 서정적이며 관조적이고 담담하기 때문이다.

'야시'에는 두개의 중편소설이 실려 있다. 작년에 호러소설대상을 받은 '야시'와 그 이후의 작품인 '바람의 도시'가 그것이다. 두개의 이야기는 별개의 작품이지만 일상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요괴/신의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똑같다. 바람의 도시는 '고도'라는 요괴나 신, 혹은 선택받은 인간만이 지나다닐 수 있는 미로와 같은 길에서 사람이 만나고 이별하는 일을 가슴이 시릴 정도로 쓸쓸하게 그려내고 있고, 야시는 요괴가 장사하는 밤의 시장에서 평범한 돌맹이부터 어린아이, 젊음, 능력, 영웅의 칼, 현자의 돌까지 거래가 되는 기묘한 풍경에서 자신의 감추어진 죄악을 들추어내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 속의 호러적인 요소는 '또 다른 세상'의 풍경과 그 속의 요괴, 그리고 낯선 공간에 홀로 남겨져 버린 불안감과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숨겨진 죄악이다. 하지만 첫머리에 밝혔듯이 호러소설이라는 느낌이 다가오지 않는 것은 작가가 이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다. 쓰네가와 고타로가 그리는 또 다른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화된 도시와 대립되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있는 세상을 매우 아름답고 우호적이게 표현한다. 비포장도로와 물소가 끄는 달구지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영구방랑자 등등. 또 어린아이를 팔아 능력을 사고, 노인이 아이를 상대로 젊음을 교환하고 잔인하게 도끼로 머리를 내려치고, 칼로 머리를 베어버리는 등의 일련의 행위들은 결국 개인의 카르마 혹은 속죄와 연관이 되어 있어 기본적으로 슬픔의 감정을 깔고 들어가기 때문에 호러적이진 않다. 하지만 길을 잃어버린 아이가 혼자서 이별의 아픔을 감당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정말이지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호러적인 관점에 너무 비중을 두지만 않는다면 쓰네가와 고타로의 '야시'는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야시'보다는 '바람의 도시'를 강추한다. 뭐, 어차피 책 한권에 다 들어있지만 말이다.

일본 호러소설 대상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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