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10점
우타노 쇼고 지음/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소비자를 현혹하여 품질 낮은 제품을 팔아 그들의 돈을 10원짜리 한장까지 뽑아먹는 악덕기업이 결국 그들을 보험사기로 살해하기까지하는 악랄한 행태를 고발하는 추리 소설이다. 내용도 재미있고 의미심장 하지만 역시 이 소설이 유명한 것은 서술트릭의 반전 때문이다. 그 서술트릭의 반전이 지나치게 허무하다 하여 사기라고 원성을 살 정도로 소문난 소설이기도 하고. 하지만 반전의 명성과 서술트릭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음에도 역시 속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본래 반전이라는 것이 독자에게 교묘하게 사기치는 것 아닌가?)

인간이 가진 선입견을 이용한 서술트릭, 예를 들어 등장인물을 의사라고만 표현하면 독자는 대개 남자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알고보니 여자였다라는 식의 고정관념을 건드리는 방식은 곰곰히 생각할 수록 꽤나 매력적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선입견을 이용한 반전은 영화보다는 소설에서 빛을 더 발한다. 영화는 시각적 정보를 제공하기에 상상의 여지가 줄어들지만, 독서의 대부분은 독자의 상상에 의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인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묘사가 아주 정교하더라도 A가 상상하는 주인공과 B가 상상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독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더욱 극대화 되기도 한다. 정교한 서술트릭일수록 선입견을 더욱 정교하게 파고든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반전에 뒤통수를 맞으면서 반전에 대한 짜릿함 보다는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는 것에 묘한 깨달음이 있었다. 사실 나는 꽤나 열려있고, 많은 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식으로 '너도 이렇게나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라고 도발적으로 말을 하는 소설을 대하고 나니 뭐랄까 좀 더 분발하자는 느낌이랄까. 독자에게 편협한 사고관을 일깨워주는 장르 소설이라니 간만에 정말 즐거웠다. 아마 몇 년이 지난후 내용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다시 읽어도 똑같이 반전에 당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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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과 같은 만능 슈퍼히어로, 다크맨과 같은 안티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과 같은 인간적인 고뇌에 번민하는 슈퍼히어로도 등장했으니, 킥애스처럼 별다른 능력이 없는 정말로 평범한 인간이 슈퍼히어로의 꿈을 꾸는 영화가 나오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온갖 종류의 슈퍼히어로 영화의 패러디와 오마쥬가 가득한 영화이면서도 그 모든 것을 거부하는 힘이 있는 영화다.  '초능력 없는'과 '슈퍼히어로' 라는 단어 사이에 모순이 존재하기에 한계도 분명히 있는 영화고. 데이브가 브루스 웨인의 예를 들면서 평범한 인간도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자 친구가 그는 무지하게 값비싼 장비들을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고 반박한다. 그런 반박이 킥애스에도 정확히 통용된다. 결국 마지막에 빅대디가 구입한 값비싼 장비로 악당들을 쳐단하니까 말이다. 결국 초능력 없고, 평범하면서도 현실성 있는 슈퍼히어로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영화라고나할까. 그렇지만 영화가 주장하는 현실의 슈퍼히어로 논쟁에서 벗어나면 이렇게도 즐겁고 막나가면서 재미있는 영화도 없다.

킥애스를 보면 누구나 힛걸의 매력에 반하게 된다. 씨발을 입에 달고 사며 쿨한 표정으로 악당들을 사지절단하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통쾌하기 짝이없다. 그러나 10살 꼬마 여자아이가 행하는 이 도륙의 현장을 보는 것은 찜찜함을 동반한다. 왜 어린아이가 살인을 해야만 할까. 영화는 그녀에게 복수라는 명분을 준다. 복수에 대한 분노는 아빠인 빅대디에 의해서 주입된 감정이다. 갱단에게 살해당한 엄마의 복수를 위해 아빠는 그녀를 살인병기로 키워낸다.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원작을 보면 사실 힛걸에 관한 굉장한 반전이 하나 숨어있다. 경찰이었던 빅대디는 갱단에게 아내를 잃고 방황하지만 그의 딸과 함께 복수를 한다는 것이 기본 이야기이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빅대디는 굉장한 만화광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코믹북 형태로 기록한다. 원작에서는 마지막에 빅대디가 죽기전에 킥애스에게 고백을 한다. 사실 자신은 경찰도 아니고, 단순한 카드회사 직원이었으며 바람난 아내에 신물이 나서 딸을 데리고 도망간 한심한 만화광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도 킥애스와 마찬가지로 만화와 같은 삶을 꿈꾸었으며 딸도 한번 뿐인 인생을 지루하게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만들어 주었다고. 그러니까 빅대디와 힛걸이 가진 복수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힛걸은 아버지가 들고 다니는 캐리어에 많은 돈이 있고 그 돈이 자신들의 자금줄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정작 캐리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모른다. 갱단이 빅대디가 죽기전 캐리어를 열었을 때 그 안에는 한정판 만화책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한정판 만화책을 이베이에 팔아서 자금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빅대디가 벌인 영웅 놀음은 그저 현실성을 잃어버린 만화광의 철부지 짓거리였다는 것이다. 킥애스는 이렇게 슈퍼히어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변용하면서도 매니아들에 대한 철저한 패배감을 심어주는 작품이다. 물론 원작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해피엔딩이다. 악당들을 쳐부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원작의 결말이 조금더 의미심장하다. 힛걸은 엄마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빅대디가 힛걸을 데리고 나간후로 실종된 그녀를 줄곧 찾고 있었다. 게다가 원작에서 킥애스는 케이티에게 자신의 존재를 고백했다가 멍청한 바보새끼라는 말까지 듣고 차인다.


영화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원작이 슈퍼히어로 공식의 전형을 하나하나 해체해서 결국 슈퍼히어로라는 것은 세상에는 없지만 소소한 영웅들이 세상의 톱니를 돌린다는 킥애스라는 작품의 목적에 좀 더 부합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영화는 그 자체로 최고의 각색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무지하게 재미있다. 원작의 모든 장면들을 버리지 않고 이용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피칠갑 B급 액션 영화로 확실하게 변모시켰다. 그 중심에는 클로이 모레츠가 연기하는 힛걸이 있다. 이 귀여운 꼬마 아가씨의 매력은 굉장하다. 쳐진 눈과 삐죽거리는 두툼한 입술이 너무 귀여워서 무슨짓을 해도 다 용서해 줄 것만 같다. 특히 황야의 무법자 테마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마지막의 액션씬의 박력은 굉장하다. 마지막 바주카포 씬까지 말이다. 뭐라고 설명해도 참 이런 영화는 그냥 봐야지 맛이다. Awesome!

덧붙여.
-. 큰 힘이 없으면 큰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라는 식의 패러디가 가득차 있어서 요런 걸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 이렇게 욕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는 어차피 19금이니까 확실하게 번역을 해주면 어떨까. Fuck you가 엿먹어라 정도의 욕이 아닌것은 누구라도 알잖아.

-. 빅대디의 니콜라스 케이지, 힛걸의 클로이 모레츠, 킥애스의 아론 존슨까지 모두 눈이 쳐져서 다들 착해보이는데 쿨한 척을 하니까 뭐랄까 원래 안그런데 진지한 척을 해서 귀엽게 느껴진다고나할까. 특히 니콜라스 케이지는 이런 역에 정말 잘 어울린다.

-. 영화 세브란스의 바주카 장면 이후로 가장 웃긴 바주카 씬이 아니었나 싶다. 악당 한명을 그 커다란 바주카포로 날려버리는 통쾌함과 유쾌함이란! 외국애들이 바주카라는 발음을 능청스럽게 하는 것 보면 왠지 다 바보같고 멍청해 보인다. 바주카를 말할 때는 왠지 모두 그 억양과 특유의 깜짝놀라는 바보스런 표정을 짓는다.

-. 힛걸을 보고 있자니, 힛걸을 닮은 딸이 너무나 갖고 싶었다.

제목: 킥애스: 영웅의 탄생 (Kick-ass, 2010)
감독: 매튜 본
배우: 아론 존슨, 클로이 모레츠, 니콜라스 케이지, 마크 스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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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의 영웅담인 영화 타이탄은 그리스 신화를 살짝 꼬아서 신과 인간의 대결 구도를 취하여 신의 횡포에서 벗어나 인간들의 왕국을 만들려고 하는 욕심을 부려보는 영화지만, 결국 신은 신이요, 인간은 인간이다라는 다소 허망하고 무력한 결말에 이르는 영화다. 하데스에게 양부모와 동생을 잃은 페르세우스는 신에게 분노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신 제우스와 인간인 다나에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인 자신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고 제우스의 도움을 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없다라는 완강한 자세로 거부하며 자신은 끝까지 인간으로서 신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다짐이 얼마나 완고한지 제우스가 내린 신검을 사용하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을 적들도 그의 고집으로 인해 주변의 동료들이 죽어나감에도 끝까지 신검을 손에 들지 않는다. 그러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이오가 죽음에 이르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신검을 손에 든다. 이후로 그의 행적은 내가 언제 인간으로서 이기고자 했는지를 망각하고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을 누비며 메두사의 목을 들고 크라켄을 처치한다. 영화 마지막에 씽긋 웃어보이기까지하며 제우스가 내린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하고. 애초에 민초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전복을 노렸지만, 결국 권위와 힘에 기대지 않고서는 아래에서 부터의 봉기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철저한 패배의식이 담겨 있는 영화라고나 할까. 그래서 페르세우스의 영웅담이고 신나는 해피엔딩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당혹감을 심어준다.

상하의 전복이라는 욕심을 품었던 반신반인 캐릭터로 오락 영화에 진중한 무게감을 실어볼까 했던 욕심은 영화 스타일처럼 후반에 가볍게 묻혀 버렸다. 루이스 리터리어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아니니까. 아무튼 내용 자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롤러 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보는 오락 영화로서 본다면 그다지 나쁘진 않다. 무엇보다 거대 전갈이나, 메두사, 크라켄 같은 크리쳐들의 모습을 유려한 CG로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게다가 하데스의 역동적인 공격까지 더해서 말이다. 킬링 타임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구태여 사용한다면 킬링 타임용으로서는 전혀 손색이 없는 영화라 해도 틀리지 않을 듯 하다.

덧붙여.
-. 샘 워딩턴은 비슷한 이미지를 단시간에 너무 많이 소모하는 것은 아닐까. 터미네이터4와 아바타, 타이탄까지 전부 동일 캐릭터라고 해도 믿을 듯 하다. 게다가 머리 스타일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눈에 확 뛰는 스타는 아닌데 어디에 넣어놔도 왠지 튀지 않고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한다. 은근히 목소리도 매력적이고.

-. 다나에에게 난봉꾼 제우스가 황금비로 내려와 페르세우스를 잉태하는 장면은 클림트의 그림 다나에로 유명한데 영화에서 이 장면을 멋지게 만들순 없을까 궁금. 혹시 그런 영화가 있다면 제보를 받습니다.

-. 타이탄은 1981년 영화인 타이탄족의 멸망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래리 하우젠의 스톱모션이 빛을 발했던 원작에서 메두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꽤나 섬찟 했던 기억이 있다. 어릴때 봐서 그런가 몰라도. 그런데 메두사라는 존재 자체가 굉장히 무시무시하지 않나. 타이탄의 액션은 신명나고 활기차지만,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좀 아쉬웠다. 원작의 공포스런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수용했으면 좀 더 멋진 영화가 됐을텐데.

-. 안드로메다라는 이름이 나오자 나말고도 킥킥 거리는 관객들이 꽤 있더라. 모두 같은 생각 한거임.

제목: 타이탄 (Clash of the Titans, 2010)
감독: 루이스 리터리어
배우: 샘 워딩턴, 리암니슨, 랄프 파인즈, 알렉사 다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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