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문2는 1편과 마찬가지로 열강 세력에 짓밟힌 중국인의 자긍심을 쿵푸로 상대방을 쓰러뜨리며 쾌감을 불러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아주 전형적인 액션 영화다. 1편과 마찬가지로라는 말을 쓰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캐릭터의 얼굴들만 바뀌었을 뿐 인물 관계나 갈등 구도가 판박이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가끔 폭행죄로 경찰에 괴롭힘을 당하는 엽문 가족을 도와주는 지인이 있고, 어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 사고를 치는 청년이 있고, 열강측에 붙어서 끄나풀 노릇을 하며 같은 민족을 핍박하지만 결국엔 급작스럽게 착해져 자신의 안위따위는 생각도 않고 중국인을 도와주는 인물이 있으며, 물론 절대 고수 엽문에게 도전하는 다른파의 고수들이 있다. 이 고수들은 항상 엽문의 실력에 탄복하고 굳은 심지에 감화되어 그를 존경하게 된다. 다시 한번 물론 중국인을 핍박하는 세력이 있고 그들중 누군가는 굉장한 고수다. 그 고수는 가라데를 사용할 수도, 복싱을 할 수도 있지만, 여하튼 엽문이 잘 아는 누군가를 비열한 대결을 통해 죽이게 된다. 그리고 엽문은 불합리한 대결을 펼치면서도 통쾌하게 복수를 한다.

시작만 봐도 끝을 알 수 있는 빤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가면쓴 살인마가 등장하는 슬래셔 공포영화가 그렇듯이 평면적인 스토리를 인정한다면 다른 것을 좀 더 여유롭게 중점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엽위신, 견자단, 홍금보 콤비가 만들어내는 영화의 포인트는 이야기가 아니라 액션이다. 엽문의 액션은 에피소드별로 펼쳐져 권법과 폭력조직간의 개싸움부터 무술 고수들의 권법과 권법의 대결, 그리고 권법과 복싱 같은 이종간의 격투로 이어진다. 엽문은 황비홍과 마찬가지로 권법으로 사람을 해하는 것을 꺼려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아무리 죽일 작정을 하고 도끼같은 칼을 들고 덤벼들더라도 자신이 맘껏 공격한다면 상대가 크게 다칠 것을 알기 때문에 타격직전까지 주먹이나 다리를 들이밀었다가 일순간 멈추고 파워를 살짝 낮추고 가격해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액션을 펼치는 인물이 굉장한 고수임을 주지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엽문의 진정한 힘에 대한 여백의 공간은 영화를 클라이막스로 이끌고 가는 동력이 된다. 관객은 과연 엽문이 풀파워를 발휘한다면 어떠한 액션이 나올것인가 자연스레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살파랑, 용호문, 도화선에서 엽문에 이르기까지 엽위신과 견자단이 만나면 정말 굉장한 액션이 탄생하는 것 같다. 살파랑에서의 오경과 견자단의 난도질 대결과 홍금보와 견자단의 이종격투 대결, 도화선의 후반 예성과 견자단의 대결 등 걸출한 장면들이 한둘이 아니다. 엽문2에서도 견자단이 홍금보와 펼치는 원탁의 대결은 명불허전이다. 게다가 복싱선수를 1초에 10번 이상 때려 손이 보이지도 않는 슈퍼꿀밤으로 제압하는 마지막 장면은 또 어떻고. 속이 다 후련하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오버 연기를 하는 복싱선수를 비롯해 너무도 쉽게 갈등이 해결되어 헛웃음이 날 정도의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총출동하는 영화지만, 그들이 펼치는 액션은 모든 것을 삼켜버릴 정도로 한마디로 멋지다.

엽문이 중화사상을 고취시키는 낯간지러운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항상 엽문이 말하는 마지막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사람의 지위에 상하는 있지만, 인격에 경중은 없다라는. 이런 엽문의 사상을 들은 사람들은 중국인이건 서양인이건 모두 탄복하여 박수를 보내지만, 정작 그 순간 엽문은 쓸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스크린을 벗어나기에 마지막 장면은 일견 기묘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나가 되어 박수를 치는 주변인물들과 엽문이 섞여보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엽문의 사상에 감화되어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고수이기 때문에 갈채를 날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는 엽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 캐릭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찬찬히 뜯어보면 엽문이라는 영화는 좀 특이한 구석이 있는 영화다. 어쨋거나 엽문3편이 기대된다. 견자단의 액션은 무조건 추천이고.

덧붙여.
-. 번소황이 다시 등장하여 반가웠지만, 어째서 액션씬은 하나도 없는게냐.

-. 2006년 신조협려에서 양과역을 했던 황효명이 캡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고 등장함에도 왠지 어디선가 유역비가 막 날라올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이고야.

-. 성공한 영화의 후속편은 보통 내용이 빈약해지고 액션이 풍성해지기 마련인데, 나는 이런 시퀄도 참 좋아한다. 특히 후속편에서 풍성해지는 것이 물량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무언가 일 때 더욱 그렇다. 견자단이 한번이라도 더 주먹을 내지를때 조금이라도 더 즐거울 수 있다. 살파랑 블루레이 나왔으면 좋겠다.

-. 모두 실존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황비홍의 액션은 당근 뻥카라고 생각하여 너무 과장되네 어쩌네 하는 설전은 없는데, 엽문에 대해서는 왠지 레알인지에 대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둘다 영화적 과정이 상당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제목: 엽문2 (Ip man2, 2010)
감독: 엽위신
배우: 견자단, 홍금보, 황효명, 웅대림, 오가련, 번소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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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섬살인자들의 섬 - 10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황금가지
정신병력을 가진 살인자들이 수감된 정신병원에서 환자 한명이 사라진다. 그리고 수사관 두명이 조사하러 섬에 온다. 한명의 수사관은 이 병원이 국가와 기업이 환자에게 신약에 대한 비인간적인 임상실험을 한다는 비밀을 어렴풋이 알고 이를 파헤치려한다. 또한 그 수사관은 자신의 아내를 방화로 살해한 범인이 이 병원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병원에 상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결탁하여 그들을 속이려고 한다. 게다가 같이 파견된 수사관 또한 믿을 수 없다.

마틴 스콜세지에 의한 영화화된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은 음모로 감싸인 거대 집단에 개인이 도전하는 소설이다. 그의 다른 소설들처럼 아픈 과거사를 안고 있는 주인공은 그로 인해 끊임없이 고뇌하며 정의를 행한다는 대의를 내세우기보다 개인의 복수를 꿈꾸는 좀 더 인간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결국 스스로의 트라우마가 자신의 현재 모습을 규정해버린 어찌보면 스스로의 함정에 갇혀 버린 인물이기도 하고. 전쟁 참여자로 많은 폭력을 자행했던 인물이 과거를 털지 못하고 그 속에 함몰되어 버린다는 내용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고립된 섬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더할나위 없이 어우러져 끈끈한 긴장감과 공포를 선사한다.

살인자들의 섬의 본래 제목인 셔터 아일랜드라는 말처럼 철저하게 고립된 섬에 위치한 정신병원에서 수사관 두명을 제외한 모두가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상황은 폐쇄 공포증을 넘어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악에 대해 소시민이 대항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을 통감하게 된다. 그리고 반전으로 연결되지만 그 무기력함은 기어이 개인을 넘어서 악의 근원 (과거라는 도돌이표)에 도달하기까지하니 참으로 신나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지면을 통해서 행간에 뿜어져나오는 어둑어둑한 분위기와 장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재미를 한껏 끌어내며 함유하고 있는 메시지 또한 지나치기 아까운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은 정말이지 아무거나 읽어도 다 재미있다.

덧붙여.
-. 정신병원과 관련된 영화들을 보면 타의에 의해서 병원에 수감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는 자의로는 결코 병원을 걸어나갈수 없다라고 묘사되는 영화들이 너무나 무섭다. 터미네이터2에서 사라코너가 의사와 면담할 때마다 자기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넨 여기서 더 있어야돼'라고 의사는 못 박아 버리고, 혹은 체인질링에서의 크리스틴은 또 어떻고.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의사라는 권력이 정부조직과 결탁하여 개인의 자유의지를 말살하는 영화들을 보면 그 벗어날 수 없는 갑갑함으로 인해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이 크고 작든 현사회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 더욱 무섭고. 소설 속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삼단논법은 이런 원칙으로 시작되죠. '미친사람들은 자기가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세요?
좋아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죠. '밥은 자기가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그리고 세번째로 '그러므로'로 시작되는 부분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므로 밥은 미쳤다'
일단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미쳤다고 생각해 버리면, 다른 경우에는 그 사람이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었을 행동조차 미친 사람의 행동으로 간주돼요. 그 사람이 자기는 미치지 않았다고 멀쩡한 정신으로 주장하는 건 '부인'이 되죠.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마땅히 가질 만한 두려움은 '편집증'으로 간주돼요. 생존 본능에는 '방어기제'라는 꼬리표가 붙고요. 무슨 짓을 해도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사실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죠. 일단 여기 온 사람들은 다시 밖으로 나가지 못해요.  p.362


-.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조물주가 있다면 그는 분명 매우 폭력을 사랑하는 인물일 거라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소설속의 교도소장의 대사.
하나님은 폭력을 사랑하신다네. 자네도 알지?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에 폭력이 왜 이리 많겠나? 폭력은 우리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지. 우리는 숨쉬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폭력을 휘둘러. 전쟁을 하고, 희생 제물을 불태우고, 형제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몸을 공격하지. 그리고 너른 벌판을 냄새나는 시체들로 가득 채워. 왜일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으로부터 우리가 교훈을 얻었다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드리기 위해서일세.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진, 허리케인, 토네이도를 주시네. 하나님은 우리 머리위로 불을 뿜어내는 산들을 주시지. 배를 집어삼키는 바다도 주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연을 주셔. 자연은 미소를 지으며 상대를 죽이는 살인자일세.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 몸에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은 생명의 피가 그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우리가 죽음을 통해 믿게 되도록 질병을 주신다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욕망과 분노와 탐욕과 더러운 마음을 주신다네. 하나님을 기려 폭력을 휘두르게 하려고. 우리가 방금 경험했던 이 폭풍만큼 순수한 도덕적 질서는 없어. 세상에는 도덕적 질서가 아예 없지. 내 폭력이 자네의 폭력을 이길 수 있는가, 그것만이 있을 뿐이야.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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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몸 구석구석으로 붉은 피를 흘려보내 인간이 따뜻함을 지니도록 해 준다. 손의 온기를 통해 나의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 - 서로 말 없이 정을 나눌수 있는 것, 무언의 사랑을 흘려보낼수 있는 것도 다 이녀석 덕분이다. 그리고 물론 심장의 커다란 박동은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척도이기도 하다. 삶은 다른이의 심장 박동 소리와 공명하며 이루어내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새삼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보통의 심장이 이러하거늘, 1cm도 되지 않는 생명체가 살아있음을, 나 여기 있어요라고 피를 흘려보내며 커다랗게 울려퍼지는 심장의 박동 소리는 감동을 넘어 그 자체로 기적에 다름 아님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제막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너로 인해 이 아빠는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깨달았단다. 사랑한다. 울애기야. 얼른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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