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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 2008. 1. 17. 17:37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를 시작으로 극장에서 필견해야할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없는 시간과 마이너스를 향해 달려가는 통장만이 내 발목을 붙잡는구나. 마음은 벌써 스크린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이번 주에 개봉하는 팀버튼의 스위니 토드를 시작으로 3월에 막이 오르는 이블데드 뮤지컬에 앞선 1월26일 상영 예정인 '이블데드 1, 2편 함께 보기 시사회'에도 꼭 참석해야할 터이고, 24일에 개봉하는 '에반게리온 서'는 반드시 용산 CGV에서 봐줘야만 할 터이고, 어울리지 않게 한겨울에 쏟아져나오는 공포영화들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미스트'도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만한다는 압박감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신작인 '눈물의 어머니'는 국내 개봉 소식이 깜깜하니 나중에 DVD를 구입한다고 스스로 합리화 시키면서 어둠의 루트로 돌아다니는 파일을 외면하지 못해 이미 다운 버튼을 눌러버리고야마는 이 나약함에 다시 한번 고개를 떨구고.... 크로넨버그의 신작인 eastern promise도 봐야하는데 '폭력의 역사' 때처럼 분명 개봉할려면 한참을 기다려야할 터이고... 이치 더 킬러를 능가한다는 프랑스산 공포영화 '인사이드'의 북미 DVD 출시는 더디기만 하고... 1월에 왜 이렇게 보고 싶은 영화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건지 짜증이 다 날려고 한다.

주말 밖에 시간이 없으니 어떻게든 시간 배분을 잘 해서 모두 보고 말겠다는 다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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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눈먼 자들의 도시 - 10점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네오북)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의 설정은 실로 단순하다. 어느날 갑자기 원인 불명의 실명 전염병이 한사람으로부터 불가항력적으로 퍼져나가 순식간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맹인이 되고, 단 한명만이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맹인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공포소설보다 더럽고 무섭고 잔인하고 세세하게 잘 묘사가 되어 독자로 하여금 인간 본연의 모습을 깨닫게 하고 현사회를 풍자한다.

격리된 맹인들 속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의 지옥을 읽는 것, 그러니까 눈 뜬 여인이 지켜보는 새로운 사회상을 보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어떤 것보다 절망스럽다. 소설은 끊임없이 그들이 눈이 멀기 전에도 아무것도 보고 있지 못했음을 설파하고 독자도 눈먼자들에 다름 아님을 강조한다.

새삼스럽게 자본으로 이루어진 이 사회에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모습을 역설적으로 그렸다고 얘기하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보이는 것에만 의지하는 얄팍한 벽을 사이에두고 그것이 얼마나 쉽게 붕괴될 수 있는 것인가하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성으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타인을 물질 자체로 여기고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보이는 것만 믿는 작금의 세상이 눈이라는 신체구조하나로 더러운 마음들이 표면적으로 그렇게 간단히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3인칭 소설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개개 인물들에 감정이입할 틈을 주지 않고 clockwork orange처럼 억지로 눈을 뜨게 하고 보기를 강요하는 것 같아 읽기가 어려운데, 눈먼 자들의 도시는 그런 소설 중 단연 최고다. 이런 내용과 형식의 소설을 읽는 것은 진정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고문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눈 뜬 자가 가장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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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키 매키 감독의 데뷰작인 '메이'는 타인과 소통을 하지 못해 파멸해 가는 여인의 이야기이다. 메이의 어린 시절이 자세하게 묘사되진 않지만 그녀가 사시로 인해 친구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고 부모는 그런 그녀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하기 보다는 감추도록 교육시켰을 거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그녀는 타인과 대화하는 법-누가 알겠느냐만은-을 알지 못한다. 엄마에게 선물받은 기괴한 인형인 수지만이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타인과 함께 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에 그녀는 매우 순수해 보인다. 홀로 있어야 순수할 수 있다는 기묘한 생각과 함께 그녀의 이런 순수함은 영화속에서 매우 강력한 긴장감으로 나타난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남자의 예쁜 손에만 집착(!)하는 심리와 질문과 대답 사이에 오가는 리듬 자체를 모르는 그녀가 하는 대화는 불안감 그 자체이다. 순수하게 너무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대상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순수함만큼 잔혹한 공기를 불어올 수 있다.

메이는 두 명의 친구를 사귄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남자 아담과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레즈비언인 폴리. 그 둘은 모두 메이와 처음 관계를 가지려 할 때 메이가 '나는 좀 이상한 애야'라는 말을 할 때 '나는 이상한 것이 좋아'라는 말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의 이상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남자친구가 좋아할거라 생각해서 키스하다가 입술을 물어뜯는 메이가 정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이상한 것과 메이가 말하는 이상한 것은 다른 것이다. 메이는 스스로의 별남이 진짜 유별나서가 아니라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라는 무지에 가까운 순진함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타인과 함께 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그녀는 당연히 버림받을 수 밖에 없었고, 그녀는 자신만의 친구를 만들기로 작정한다. 아담의 손과 폴리의 목, 문신이 멋진 거리의 청년의 팔, 폴리 친구의 미끄한 다리를 잘라서 봉제인형을 만든다. 얼굴은 그녀의 인형인 수지로 마무리를 하고. 하지만 결국 시체들의 조합인 amy-may의 변형-는 말을 할 수 없고 그녀와 친구가 될 수 없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눈을 빼서 에이미의 얼굴에 붙여준다. 영화의 첫머리에서 가위로 스스로의 눈을 찌르는 강렬함은 마지막의 이 장면에서 급격한 슬픔으로 변모한다. 시체를 사랑하는 네크로맨서들은 모두 외로운 영혼들이다.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메이역의 안젤라 베티스는 two thums up이고 요즘에는 코믹적인 이미지로 굳어버린 안나 패리스의 연기도 만족스럽다. 매키 감독의 메이는 잔인하고 피가 튀기는 영화이지만 늘어나는 시체의 수만큼 슬픔의 감정도 비례하여 증가하는 그런 영화다.

Plus.
1. 공포영화 광인 남자친구 아담의 방에 걸려있는 영화 포스터는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오페라'다.

2. 메이는 희생자의 집으로 찾아가 시체를 토막낸 뒤 커다란 트렁크 캐리어에 넣고 길거리를 유유히 지나온다. 때마침 할로윈 데이라 사람들은 그녀의 커스튬을 칭찬한다. 코미디와 공포와 멜로는 이 영화에서 이렇게 만난다.

제목: 메이 (May, 2002)
감독: 러키 매키
배우: 안젤라 바티스, 안나 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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