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영화를 좋아하는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피터잭슨의 영화를 보면 고무인간과 데드 얼라이브를 그리워하고, 샘 레이미의 영화를 보면 이블데드 시리즈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들이 메이저에서 활동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들의 영화속에는 호러적인 감수성이 슬쩍슬쩍 베어있기 때문에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 이 아저씨들이 저예산 아날로그 특수효과 호러영화를 한 편만 더 만들어줬으면 좋겠구나'라는 생각이 아쉬움과 함께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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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래 '무슨무슨 맨' 이런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다크맨과 스파이더맨은 참 좋아한다. 안티히어로/분열된 자아/정체성/소시민 등의 키워드가 그 캐릭터 속에 들어가 있어서 라기 보다는(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그런 것들은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특이한 설정이라기 보다는 이제는 히어로 영화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듯 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날아다닐 수 없지만 제법 날아다니는 느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긴박감 넘치는 액션과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 액션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피터가 보여주는 액션은 상승의 액션이 아니라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지면서 행위를 펼치는 하강의 액션이기 때문이다. 마천루의 빌딩을 거미줄을 발사해 최대한 힘껏 도약하여 올라간 후 낙하하면서 상대방과 합을 겨룬다. 주먹에 맞아서 더 아래쪽으로 떨어져나간 적을 다시 거미줄로 끌어올려 한번더 날린다. 그래서 스파이더맨이 보여주는 하강의 액션은 날개 없는 인간이 땅에 닿기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펼쳐지는 긴장감과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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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더맨 얘기를 하려고 글을 쓴 건 아니고, 스파이더맨3을 보고 나서 불현듯 이블데드가 다시 보고 싶어져서 시리즈를 주루룩 감상했다. 2편까지는 여러번을 반복감상했었는데, 3편은 아주 예전에 한번 보고 너무나 코믹스러워진 상황에 약간 실망감을 갖고 있었던지라 다시 보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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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 이블데드3-어쩌면 처음 본 이라고 해도 그닥 틀리지 않은-는 샘 레이미의 유머스러움이 약간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까지 버무려져 있었는데 브루스 캠벨의 슬랩스틱은 이제는 경지에 접어들었다고 느껴질정도로 감탄스러웠다. 판타지의 외피를 둘러싸고 착한 애쉬와 나쁜 애쉬가 서로 대치하는 상황은 오버해서 보면 1, 2편을 통과하면서 악마에 의해 분열된 애쉬의 자아가 그리는 망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슬며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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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출시된 DVD에는-이것도 리핑판인지는 모르겠음- 애쉬가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와 마트에서 동료들에게 무용담을 이야기하고 악마로 변한 손님을 총으로 날려버리고 그가 진정 호러영화의 ''임을 자처하고 끝이 나는 엔딩을 포함하고 있다. 스페셜피쳐에 보면 오른쪽 상단의 '죽음의 책'을 클릭하면 '오리지널 엔딩'이라는 컨텐츠가 하나 생기는데 이것을 누르면 배드엔딩으로 알려진 또다른 엔딩이 이스터에그로 실려 있다. 어제 감상하다가 이 이스터에그를 우연히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 짧은 단상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길어져 버렸다. 아무튼 가지고 있으신 분은 한번 플레이 해 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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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소리 마마아임 소리 마마 - 10점
기리노 나쓰오 지음/황금가지
마음이 없는 타고난 살인자, 양복입은 뱀으로 표현되는 사이코패스란 용어가 있다. 보통 사람과는 DNA부터 다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하고 일반인과 뇌의 활동상태나 신경전달물질 양의 차이로 인해 범죄행위에 대해서 무감각하다는 인간들. 선천적으로 마음의 기형을 타고난 인간들이 저지르는 엽기적인 행위들은 무자비함으로 인해 공포를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타고난'이라는 태생적인 요소로 인해 더 큰 공포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살인마와 함께 살아가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악마들과 함께 살아가기도 한다.

아임 소리 마마는 사회가 만들어낸 사이코패스(모순된 말이지만 기리노 나쓰오의 여인들은 정말 그렇다)인 괴물같은 여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부모의 존재조차 모르고 태어나면서 부터 사창가에서 온갖 구박과 멸시를 받으며 자라난 아이코. 사창가의 포주였던 왕엄마가 죽어버리자 창녀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아이코는 고아원을 거쳐 사회로 나가지만 어떤 집단에서건 그녀는 차별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차별과 학대 속에서 자연스레 체득한 생존방법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과감하게 죽이고 범죄가 발각되지 않기 위해 한곳에 머무르지 않으며 성욕을 채우기 위해 부랑자와 섹스를 하며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또 살인을 저지르는 반복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코는 태어나면서 부터 버림을 받은 존재이고 따뜻한 말이나 칭찬 한번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타인에게 기분 나쁜 존재였고 그런 기분 나쁨으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소설에서 그녀를 차별하는 인간들 또한 사회적인 약자들이다. 창녀와 부모가 없는 아이들. 그들 모두 다른 누군가로부터 끊임없이 차별을 받아온 대상들이고 자신이 받아온 모욕을 그들보다 더 낮은 위치에 놓여있는 아이코에게 풀어놓는다. 그래서 그런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먹이사슬의 끝에 몰린 인간, 즉 아이코가 살아남는 방법은 범죄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런 어머니의 자리를 누군가 대신해 주길 바라는 심정으로 자신이 동경하던 사창가의 에미씨에게 기대곤 했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폭력과 학대 뿐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진짜 생물학적인 어머니로 밝혀졌던 에미씨를 죽이면서 난생처음으로 후회라는 감정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섹스를 하는 아이를 그리고 싶었다는 기리노 나쓰오의 말처럼 이 괴물같은 인간 아이코는 그저 어머니의 품에 한번 안기고 싶었던 어린아이가 자본주의 계급사회라는 정글에 버려져 돈이라는 세상이치만을 깨달아 버린 또다른 의미의 늑대소년이 아닐까 하여 정말 서글픈 마음을 자아낸다.

그로테스크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기리노 나쓰오가 그리는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계급구조에서 개인의 능력에 따른 후천적 노력이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회적 위치에 따른 약자들이 태생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열등감 속에서 자라나는 악의 묘사는 잔혹함을 넘어서 당혹감마저 들게 하지만 누구나 한번씩은 겪어 봤을 상황들이기에 그녀가 그리는 괴물의 모습은 결국 마지막엔 눈물을 만들어낸다.

아임 소리 마마가 정말 지독한 이야기라는 것은 아이코가 보여주는 무자비함에도 있지만, 자신이 버린 아이가 '아임 소리 마마'라고 그렇게 외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녀를 한번도 안아주지 않은 에미씨에서 기인하지 않나 싶다. 연약한 감수성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마음을 한번도 내비칠 기회 없이 그저 악의 만을 뿜게 만든 또다른 사이코패스를 만든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은 그래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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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래셔 영화의 라인을 형성하는 고전 영화들 중에 히치콕의 사이코나 정말 많은 반전을 줄기차게 내보이다가 급기야 어린아이에서 살인이 끝이나는 마리오 바바의 블러드 베이나 80년대를 슬래셔의 황금기로 만들어준 존 카펜터의 할로윈 그리고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와 웨스 크레이븐의 나이트메어 그외에 정말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할로윈과 이전 영화들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있는 캐나다 감독 밥 클락의 1974년 작인 '블랙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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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기숙사에 언제부턴가 신음소리를 내는 변태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학생들은 변태라고 치부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크리스마스를 맞아 파티를 하던 도중 전화가 걸려오고 야한 농담을 즐겨하는 알콜중독자 바비(마곳 키더)가 상대방에게 욕을 한다. Big wetty pretty pink cunt같은 저속한 농담과 신음을 내던 변태는 순간 돌변하며 바비에게 '널 죽일거야'라고 말을 하고 끊는다. 다음날 방학을 맞은 학생들은 하나둘 기숙사를 떠나고 클레어라는 학생이 실종이 된다. 기숙사에 남아있던 제스(올리비아 핫세)는 갈수록 심해지는 변태살인마의 전화를 받게 된다. 한편 경찰은 최근에 여학생 강간살해 사건으로 인해 클레어가 실종되자 주민들과 함께 수색작전을 펼치는데 클레어 대신에 또다른 어린이의 시신을 발견한다
. 경찰은 전화를 거는 변태와 살인마가 동일인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추적하는데 그 전화는 다름 아니라 기숙사의 다른 방에서 걸려온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블랙 크리스마스는 살인마의 모습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 영화다. 살인마가 화면에 직접 등장하는 것은 눈 주위를 조명으로 비춘 어두운 실루엣이나 문틈으로 비치는 눈동자가 전부이고 살인마의 동선이나 살인장면은 모두 살인마의 시선으로 처리하고 있다. 끝까지 살인마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는 이 영화에서 이러한 연출은 굉장히 효과적이고 애매모호하게 끝나는 마지막 장면의 파장을 더 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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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전화를 통해서 공포를 전달하는 영화는 멀게는 마리오 바바의 블랙 사바스와 가깝게는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이 있지만, 아마 블랙 크리스마스가 어떤 영화보다도 단연 으뜸일 것이다. 이 영화를 가장 빛나게 만드는 부분은 바로 전화 목소리인데 남자의 변태신음소리로 시작해서 여자의 목소리까지 혼합된 악마같은 음성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제스와 경찰은 범인이 한명이 아닐거라고 추정을 하기도 하는데, 밥 클락 감독과 여배우들의 목소리가 혼합된 이 목소리가 바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영화를 한층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로 만들어버리는 이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흡사 엑소시스트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데 이 점이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해마지않는 이유이다. 아마도 이는 이 영화 바로 전해에 만들어진 엑소시스트의 영향이 큰 것이라 생각한다. 오컬트 영화에서 소녀의 몸 속에 들어간 악마의 목소리가 하나가 아니듯이 마치 지옥에서 걸려온 듯한 블랙크리스마스의 전화 목소리는 그야말로 별 다섯개를 줘도 시원치가 않다. 게다가 살인마에 대한 실마리는 목소리가 전부일 뿐이기도 하다. 그래봐야 살인마가 다중인격을 포함한 정신분열증 환자일거라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실마리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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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제스의 남자친구인 피터가 살인마로 밝혀지고 종결된다. 하지만 카메라는 죽은 클레어와 관리인 맥부인이 죽어있는 다락을 비추고 기숙사를 점점 확대해서 잡는데 다락 어디선가 끽끽 거리며 웃는 살인마의 웃음 소리와 크리스마스 어두운 밤의 을씨년스런 바람소리와 함께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엔딩음악을 대신한 웃음과 바람소리가 무척 큰 여운을 남기는 이 마지막 장면의 분위기는 정말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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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피한방울 나오지 않는 슬래셔 영화지만, 그 분위기와 음산함이 물씬 풍기는 이 영화는 정말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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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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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도 내용이지만 주인공인 올리비아 핫세와 마곳 키더만으로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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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원래 밥클락 감독은 이 영화의 후편으로 '할로윈'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단다. 존 카펜터의 할로윈 메이킹을 보면 그 이전에 할로윈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없어서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고 했는데, 밥클락 감독이 먼저 써먹었으면 걸작 슬래셔 영화의 제목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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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db
trivia를 보니 제작자가 영화의 결말을 제스와 클레어의 남자친구인 크리스가 공범인 것으로 하고 크리스가 제스를 죽이는 것으로 하려고 했다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제목: 블랙 크리스마스 (1974)
감독: 밥 클락

배우: 올리비아 핫세, 마곳 키더, 존 색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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