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한 정신병자 에디의 체포작전을 밀착취재하고 있던 리포터 카렌은 에디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무언가를 목격하게 되고 그 때 받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고자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요양소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곳이 늑대인간의 소굴임이 드러나고 결국 남편도 친구도 늑대인간에게 죽임을 당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카렌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고자 최후의 방송을 한다.

죠단테 감독의 1981년작 '하울링'은 늑대인간을 다룬 영화 중 가장 멋진 영화 중 하나일 것이고, 아날로그 특수효과 또한 굉장한 작품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결말의 충격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큰 울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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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이나 지난 이런 영화의 마지막을 얘기하는 것이 과연 스포일러라고 불리울 수 있을까 생각이 되지만 혹시 마지막 장면을 보고 싶지 않은 분들은 아래의 선을 펼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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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예도라는 이름으로 더욱 친숙한 허먼 여우 감독의 에볼라 신드롬은 일말의 주저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뼈와 살을 발라 만두를 만들어내던 '팔선반점의 인육만두' 3년 뒤에 만들어진 걸작이다. 허먼 여우 감독의 영화가 국내에 '팔선반점의 인육만두' 빼고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인육만두에서 보여준 불쾌함으로 인해 그의 영화는 한번이상 보고 싶지 않은 영화가 돼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도 인육만두를 보고 이 감독은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편견에 빠져 다른 영화는 애초에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지만, 에볼라 신드롬은 그런 생각을 단 번에 날려주는 영화였다.

홍콩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남아프리카 어느 중국인 식당에 숨어든 카이. 사장과 카이는 백인들이 고기를 비싸게 팔기에 싼 값으로 고기를 구하고자 줄루족이라는 원주민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곳은 에볼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고 사장은 고기를 싣고 후다닥 빠져나온다. 돌아오던 중 코끼리 떼를 만나 차가 고장나게 되고 차에서 잠깐 내린 카이는 강가에 줄루족 여인이 쓰러지는 것을 발견하고, 도움을 주려다가 강간한다. 카이는 이 여인에게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만, 죽지 않고 '천만분의 일'의 확률로 존재한다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가 된다. 일반 범죄영화처럼 진행된 영화는 여기서부터 속도를 붙여 거침없이 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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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에 감염되어 끙끙 앓고 있는 카이를 사장부인은 식당에서 죽으면 곤란하니까 버리려고 한다. 그러다 거꾸로 카이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때 들어선 사장과 함께 살해당하는데, 카이는 사장부인의 연락을 받고 온 조카까지 죽이게 된다.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팔선반점처럼 그들을 솜씨좋게 살을 발라 햄버거로 만들어 버린다. 흥건하게 피가 고인 바닥을 청소하며 카이는 '죽어서도 일 시키는 개새끼들'이라는 명대사를 읊조린다. 사실 사장과 그 부인은 일 잘하는 카이를 저임금에 홀대하며 부려먹고 있었다. 그래서 카이가 그들을 죽이는 심정이 공감이 되고 권력자가 부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물리적인 폭력으로 대응하는 카이의 모습에서 단순 고어영화였던 팔선반점의 인육만두는 에볼라 신드롬에서 블랙코미디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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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를 숙주로 해서 퍼져나간 에볼라 바이러스는 남아프리카에 서서히 퍼지게 되고 카이는 사장이 숨겨둔 돈을 훔쳐 홍콩으로 돌아온다. 돈을 펑펑 뿌리며 사창가의 창녀들과 놀아나고 창녀들로 시작하며 이곳저곳에 퍼져나간 에볼라 바이러스는 홍콩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후에 경찰에 덜미가 잡혀 인질극을 벌이는 카이는 자신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며 경찰과 사람들에게 피와 침을 뱉으며 도주한다. 그 와중에 인질이었던 어린아이는 목이 졸려 죽어버리고 카이는 '자기 잘못이 아니야'라며 그냥 버리고 간다. 시민들에게 '에볼라야~!'라고 포효하며 거리를 질주하던 카이는 온 몸이 불에타고 차에 치인 뒤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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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조용히 숨어있는 연쇄살인범을 에볼라 바이러스로 은유하여 펼쳐지는 이야기도 재미있고,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 상황이 역전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카오스의 상황을 B급무비의 정서로 환기시켜 정말 갈데까지 나가버리는 대단한 영화다. 어린아이마저 만두를 해버리는 인육만두의 금기를 깨는 정서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경찰들은 카이가 뱉은 피와 침을 소독하면서 다니는데 그 와중에 강아지가 카이의 침을 빨아먹고 아이가 강아지와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으며 '아이와 강아지'가 함께 매개체가 되어 에볼라 바이러스는 다시 사회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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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육만두에서 신경과민인 듯 눈을 부라리며 연기했던 황추생은 이번 영화에서도 카이라는 사이코패스 인물을 정말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그때그때 필요한데로 행동하고 거침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카이를 황추생만큼 잘 연기하는 인물도 없을 듯 하고 연쇄살인범을 허먼 여우만큼 잘 그리는 영화감독도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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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학기잔학기 - 10점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황금가지
정말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뉘우치기는 커녕 잡혀서 억울하다는 극악한 인간들을 접할 때가 있는데, 세상 어느 누가 사연이 없겠냐만은 그런 무자비한 인간들이라도 그렇게 자랄 수 밖에 없는 혹은 그렇게 만들어져버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이해가 갈 때도 있다. 행위에 대한 처벌과 그 행위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 말이다. 기리노 나쓰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같은 인간들은 무서울 정도로 소름이 끼치지만, 책장을 덮을 때 쯤엔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독자가 그들을 이해하게 만드는 기리노 나쓰오의 심리묘사는 정말 뛰어나다. 그녀의 작품들을 읽으면 마치 그녀가 그런 소수자의 대변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 아줌마 변호사를 해도 참 잘 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여자, 그것도 아이같은 가치관을 가진 여성을 그리다 거꾸로 몸은 아이지만(게이코는 35살인 현재까지도 한번도 섹스를 하지 않는다) 마음은 어른을 넘어서 지독한 상상력을 지닌 아이가 등장하는 잔학기는 그로테스크나 아임 소리 마마와는 또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잔학기는 10살 여자어린이가 1년여간 납치/감금 당한 후 풀려난 뒤 그 때에 생겨난 뒤틀린 욕망과 상상력을 토대로 소설가의 길을 걷는 35살의 게이코가 주인공이다. 그녀를 납치하고 기타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공장노동자인 겐지가 출소하고 그녀에게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그녀는 잊고 있었던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자신의 체험담인 '잔학기'라는 소설을 남기고 자취를 감춘다.

이 소설에는 사건의 진실을 묘사하고 그걸 또다른 소설로 쓰는 주인공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타인(남편)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서술되고 일종의 반전을 이루면서 진실이란 결국 말로서 서술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상력을 통해 받아들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얘기한다. 해서 주인공이 서술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진실이라 믿고 있던 독자는 마지막에 가서 정말 진실은 무엇일까라며 게이코가 그랬고 미야사카가 그랬던 것처럼 불온한 밤의 상상력을 펼치는 모습을 발견하며 키득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진실을 보지 않고-어쩌면 볼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지 모를- 스스로 진실이라 상상하며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섬뜩하고 본인조차도 스스로의 사건을 포장하고 기억을 왜곡시켜버렸으므로 결국 '잔학기'를 통해 기리노 나쓰오가 얘기하는 진실이라는 것은 결국 그 당사자에게조차 상상이라는 개념에 공감한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다시 한번 전달되는 잔학기는 기리노 나쓰오의 다른 소설처럼 무엇이 진실인지 끝내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기리노 나쓰오 소설에서 같은 사건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변주되어 지는 것은 화자의 뒤틀린 욕망과 질투로 인한 상상력에서 기인하는 일종의 심리적인 컴플렉스이기 때문에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다른 소설이나 영화와는 확실히 차별되는 지점이 생긴다.

잔학기는 어쩌면 소설을 쓰는 기리노 나쓰오 자신의 모습이 가장 많이 반영되어 있고 소설가로서의 그녀의 내면과 엽기적이라 할 만한 어둠의 상상력을 훔쳐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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