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월드리얼 월드 - 10점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혜원 옮김/마야(마루&마야)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은 누구나 상상은 하지만 행하지 않는 일을 실제로 행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은 여타의 작품과는 달리 이런 매우 사소한 일탈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게 뻗어나간다.

리얼월드에서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사소한 호기심의 아이러니함에서 생기는 사건을 시작으로 출발한다. 어머니를 죽이고 도망가는 소년을 어떤 소녀는 방관하고 다른 소녀는 자신과 일치시켜 응원하고 다른 소녀는 냉소적으로 그를 처벌하려 하고 어떤 소녀는 호기심에 그와 동행한다. 여기서 일탈의 시작은 타인과의 관계맺음이다. 그러니까 이질적인 타자와 관계를 맺는 순간부터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치닺고 그것은 자기 내부에 존재하고 있던 어두운 마음을 조우하게 만든다. 그래서 기리노 나쓰오 소설의 주인공들은 입버릇처럼 중얼거린다. 나는 생각보다 나쁜 사람일지도 몰라 혹은 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라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어두운 면을 안고 있고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보통 사람이다. 그래서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녀가 그리는 소설의 허구 세계는 현실의 세계에 살고 있는 누구라도 정말 한순간에 빠져버릴 수 있을만한 세계이다. 아무리 잔혹한 인간들이 나올지라도 그들은 모두 현실에서 소설속으로 걸어들어간 인물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의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는 유리망치로도 간단히 깨뜨릴수 있을만큼 약한 벽을 사이에 두고 위태롭게 공존하고 있다. 나는 기리노 나쓰오 소설의 그런점이 가장 무섭다. 올라가는 것은 평생을 걸쳐해도 힘이 들지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밑바닥의 밑바닥에 어떤 것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소름끼칠만큼 말이다.

리얼월드는 잔혹함면에서는 아웃에 미치지 못하고, 심리묘사에 있어서는 그로테스크를 넘어서진 못하며, 예측불가의 사건으로 뻗어나가는 것은 다크에 필적하지 못한다. 하지만 성장통을 겪는 예민한 소녀들과 기리노 월드의 조합은 앞의 작품들보다는 오히려 잘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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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록맨의 어린아기와 한 경찰이 살해당한다. 경찰은 살해범을 얼마전 출소한 램츄의 보복으로 단정한다. 램츄는 체포당시 록맨에게 총을 맞아 고통을 못 느끼게 된 상태. 100개가 넘는 자상으로 죽은 록맨의 아기의 초자연적인 죽음으로 이 역시 흑마술을 할 줄 안다는 램츄의 범행으로 여긴다. 한편 록맨의 아내는 바닥에 누우면 바늘로 온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되는 흑마술에 걸린다. 흑마술은 저주를 풀기전에 시행한 사람이 죽어버리면 평생동안 저주에 시달려야 한다고 한다. 록맨은 램츄를 찾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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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여우 감독의 중국식흑마술은 허먼여우라는 이름과 흑마술이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고어가 뒤섞인 오컬트 영화로 구미가 당기진 하지만, 고어는 그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하고 흑마술 자체도 다체롭게 펼쳐지진 않는다. 물론 소재가 그렇다보니 후반에 이런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평범한 수사극 정도이다. 한때 불륜을 저지른 경찰과 그의 불장난이 가져온 한 여자의 죽음, 그리고 경찰과 범죄자의 관계가 뒤섞여 사건을 복잡하게 하고 있지만 이야기가 신선한 것도 아니고 마무리가 충격적인 것도 아니다. 수사극은 CSI의 재미없는 에피소드를 한편 따온것 같고 허먼 여우의 영화라고 인장이라도 찍듯 시체해부장면과 총에 맞아 너덜너덜해진 손을 클로즈업으로 잡아 고어 감독임을 억지로 주지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기대에 정말 한참 못 미친다. 황추생이 없어서 그러나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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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강한 흑마술인 비두 흑마술은 사람의 머리가 척추와 연결된 장기들과 통째로 몸에서 분리되어서 머리만 날아가 피를 빨아버린다는 것인데, 딱 이 장면만 박수칠만 하더라. 영화에서 보통 자살 장면을 손목만 긋고 끝내버리는데 중국식흑마술에서는 손목을 긋고 그도 모자라 자기 목을 그어버린다. 이런 것에서 허먼 여우의 영화는 역시 뭔가 다르구나라고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역시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약하다. 흑마술과 고어라는 키워드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였으면 좋았을것을, 철저하게 감정이 제거된 인간들의 모습과 진짜로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생짜의 분위기가 사라진 허먼여우의 영화는 어쩐지 밋밋하다.

제목: 중국식흑마술 (降頭: Gong Tau: An Oriental Black Magic, 2007)
감독: 허먼 여우

배우: 호남, 소미기, 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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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스콧이 90년에 만든 황톳빛 느와르 '리벤지'는 마피아의 아내를 사랑한 남자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퇴역장교 코크란은 그의 친구이자 마피아 보스인 티비의 아내 미레이아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들의 밀애행각은 티비에게 들통나고 코크란은 실컷 두드려 맞고 버려지고 미레이아는 입언저리부터 귀까지 칼로 주욱 그어져 사창가에 넘겨지게 된다. 코크란은 티비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한 남자에게 구출되고 이제 그는 미레이아를 찾아간다.

데이빗 보위와 수잔서랜든, 카뜨린느 드뇌브가 함께한 독특한 뱀파이어영화 헝거로부터 시작된 토니스콧의 감각적인 연출스타일은 탑건을 거쳐 리벤지와 트루로맨스의 걸출한 영화들로 쭈욱 이어진다. 선굵은 남자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온 토니스콧의 영화에서 유독 에로틱한 느낌이 강한 영화들이 바로 위의 영화들이다. 트루로맨스야 타란티노의 그림자가 더 커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영화들에서 에로틱함은 나인 하프 위크의 그것만큼 강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에로틱한 장면들이 폭력적인 장면 사이에 어울려서 등장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폭력과 에로는 함께 할때 그야말로 두려운 것이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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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가 배경인 리벤지는 언제나 모래먼지가 바람을 따라 흩날린다. 작렬하는 태양아래 사람들의 피부는 온통 땀으로 번들거리고 황토빛 거리는 폭력의 불온한 공기가 감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코크란과 미레이아이 정사신은 정말 자극적인데, 토니 스콧은 그들의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치마가 올려지는 다리와 엉덩이, 그리고 키스할 때의 입술을 클로즈업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키스의 짠내가 느껴질 정도의 아찔함을 느끼게 한다. 이 영화를 처음 본게 한창 사춘기였을때라 메들린 스토우의 혀가 케빈 코스트너 입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일종의 충격까지 느꼈다고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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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가 아내의 부정을 알고 그들의 밀애장소로 들이닥치는 장면은 조용하지만 박력이 넘친다. 문이 부서지면서 총알이 날아와 코크란의 개에게 박히고 잠자는 코크란은 끌려나와 죽도록 맞는다. 미레이아가 그가 맞는 것을 지켜보도록 하면서 코크란의 얼굴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손가락을 밟아서 부러뜨린다. 이 장면이 잔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반대방향으로 구부러진 손가락의 클로즈업과 모래와 섞여 떨어지는 피의 걸쭉함, 그리고 퉁퉁 불어터진 얼굴때문이다. 특히 여기서 피의 걸죽함은 섹스에서의 땀을 연상시켜 더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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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의 국내개봉제목은 '이중복수'였는데, 사실 코크란은 티비에게 복수를 하지 못한다. 그가 먼저 친구를 배신하였기 때문에 티비를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를 죽이지 못한다. 그저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한뒤 미레이아가 있는 장소만을 원한다. 이 남자에게는 복수 보다도 사랑이 우선이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에 미레이아는 몸이 쇠약해져 수녀원으로 옮겨져 숨을 거두는데, 이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짠하다. 사경을 헤메다가 코크란의 얼굴을 보자 부끄러운 듯 뺨에 그어진 칼자국을 손으로 가리는 미레이아의 손을 내리면서 안아 올리는 장면은 볼 때마다 눈물을 떨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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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는 감독이나 주인공이나 모두 최고의 전성기 때에 찍은 영화라는 생각인데, 케빈 코스트너도 언터쳐블, 노 웨이 아웃, 19번째 남자, 꿈의 구장을 거치면서 한창 주가가 오른 상태여서 이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메들린 스토우는 이 영화에서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날 지경이다. 모든 여배우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영화가 있게 마련인데 메들린 스토우에게는 그것이 이 영화가 아닐까한다. 블링크와 배드걸즈 이후에는 국내에서 잊혀진 감이 없지 않지만, 리벤지의 변주라고 생각되어지는 '어벤징 안젤로(2002)'를 보니 50이 가까워진 나이에도 미모는 여전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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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코크란의 조력자로 나오는 미구엘 페러와 존 레귀자모는 없었으면 오히려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의 목적은 티비를 죽이는 거였는데, 결국 죽이지도 않으니 뭐하러 도와줬나 몰라. 존 레귀자모도 타고난 악역의 얼굴인줄 알았더니 이 영화에서는 뽀송뽀송하면서 시골뜨기의 순박함까지 느껴지는게 정말 귀엽다.

제목: 리벤지 (Revenge, 1990)
감독: 토니 스콧

배우: 케빈 코스트너, 안소니 퀸, 메들린 스토우, 미구엘 페러, 존 레귀자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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